이미지 크게보기 레티프 구센이 2001년 US오픈 4라운드 18번 홀에서 40㎝ 파 퍼트를 놓치자 망연자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마지막홀 4m 남기고 스리퍼트
다음날 브룩스와 18홀 승부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 등극

지난 2001년 4월 마스터스에서 타이거 우즈의 ‘타이거슬램’이 달성되면서 밀레니엄 벽두의 프로골프는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켰다. 이런 와중에서 마스터스 이후 두 달 뒤인 6월 두 번째 메이저인 US오픈에서도 3명의 선수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각축을 벌이면서 다이내믹한 장면을 연출했다. 둘은 미국 출신이고 나머지 한 명은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레티프 구센이었다. 물론 이들은 아직 US오픈에서 우승한 적 없는 선수들이다.오클라호마주의 털사에 위치한 서던 힐스코스에서 개최된 101회 US오픈에서 첫날부터 갤러리들에게 집중 조명을 받은 선수는 구센이었다. 10년 전인 1990년 프로에 데뷔했으나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같은 나이로 같은 시기에 프로골프에서 활약하고 있는, 같은 남아공 출신의 어니 엘스의 그늘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회 첫날부터 구센은 선두에 올라섰고 마지막 날까지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아서 4라운드에 마지막 선두 조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그의 파트너는 역시 같은 5언더파의 스튜어트 싱크였다. 마크 브룩스는 4언더파로 한 조 앞에 배치됐다. 마지막 4라운드는 첫 홀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처음부터 셋 중에서 1타차 아슬아슬한 우승자가 나올 것으로 예견된 경기였다.

전반 9홀이 진행되는 동안 승기는 구센이 잡는 듯했다. 싱크가 5번홀에서 보기를 범한 반면, 구센은 6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2타차로 앞섰다. 하지만 구센은 8, 9번 홀 연속 보기를 기록하면서 전반 9홀을 4언더파 동타로 끝냈다. 브룩스는 여전히 1타 뒤진 3언더파로 언제든지 두 선수의 발목을 잡을 기세였다.

경기가 후반으로 가면서 세 선수는 한 타 차로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선두를 바꿔가며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구센은 15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5언더파로 나섰지만 더는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브룩스는 13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 5언더파로 경기를 진행 중이었고 싱크는 17번 홀에 가서야 겨우 버디를 잡았고, 급기야 3명이 17번 홀까지 5언더파로 공동 선두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18번 홀에서 승부가 판가름 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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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조의 브룩스는 18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홀 10m에 떨궜다. 충분히 파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1m 남짓한 파퍼트를 놓쳐 4언더파로 내려앉았다. 5언더파였던 마지막 조인 구센과 싱크의 우승 경쟁으로 압축됐다. 싱크가 먼저 두 번째 샷을 했지만 공은 그린 왼쪽으로 나가면서 깊은 러프에 빠졌다. 반면 구센의 볼은 홀 4m 앞에 사뿐히 떨어졌다. 어프로치로 칩샷을 한 싱크의 공은 여전히 홀에 5m나 못 미쳤다. 구센이 유리한 상황이 됐다. 싱크의 파 퍼트는 야속하게도 홀을 스쳐 지나갔다. 낙담한 싱크는 50㎝ 탭인을 시도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이마저 실패했다. 더블 보기로 3언더파로 내려앉았다.

4m 앞에 공을 세워둔 구센은 2퍼트만 하면 우승할 수 있게 됐다. 덤덤하게 퍼팅 자세를 취한 구센은 공을 밀었다. 하지만 공은 홀을 지나 40㎝에 멈췄다. 멀지 않은 퍼팅이어서 구센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앉아 공을 쳐다본 구센은 가볍게 탭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구센의 공마저 홀을 스치듯 지나며 오히려 50㎝에 다시 섰다. 고개를 가로젓던 구센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보기 퍼트를 겨우 성공시켜 경기를 마쳤다.

앞 조에서 4언더파로 끝낸 브룩스와 구센은 월요일 18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결국 구센이 70타 이븐파로 브룩스를 2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해 첫 번째 메이저 신고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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