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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차이콥스키

결혼생활 파탄에 신경 쇠약
러시아 떠나서 스위스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 협주곡 완성

클래식 작곡가들은 유독 여행을 사랑했다. 6세 때부터 전 유럽을 누비며 10년 동안이나 연주 여행을 다닌 모차르트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 시간을 마차와 함께 여행지에서 보냈다. 찬란하고도 유쾌한 심상이 넘치는 모차르트 작품들은 대부분 여행지에서의 감상으로 가득 차 있다. 베토벤의 그 유명한 ‘월광 소나타(Piano Sonata No.14 ‘Moonlight’)’도 헝가리의 브룬스빅을 여행하던 중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고,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유명해진 ‘달빛(Claire de lune)’도 프랑스 청년 드뷔시가 이탈리아의 베르가모 지방을 여행하던 중 그곳의 정취에 영감을 받아 훗날 작곡한 곡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마스터피스는 작곡가들이 여행지에서 얻은 영감이 바탕이 돼 만들어졌다.

1877년, 37세의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iotr Ilyitch Tchaikovsky, 1840∼1893)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창작 활동과 제자 양성에만 몰두하던 그에게 어느 날 9세 연하의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Antonina Ivanovna Milyukova, 1849∼1917)가 사랑을 고백해 온다. 그녀의 구애는 열정을 넘어 막무가내였고 당장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기에까지 이른다. 궁지에 몰린 차이콥스키는 결국 1877년 7월 18일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결혼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차이콥스키는 결혼 생활의 스트레스로 투신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실패로 돌아가 목숨은 건졌지만 결혼은 파탄에 이르고 신경 쇠약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유럽 여행을 결심한다.

1878년, 차이콥스키는 스위스 제네바 호수 연안의 클라란스 리조트에 머물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부부간 성격 차이로 자살을 시도하다니! 그렇다.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위장 결혼을 시도했을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를 말끔히 정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러시아로부터 멀리 떠나 스위스에 와서 그가 느꼈을 새로운 자유의 기분은 짐작이 간다. 여행 기간만이라도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스위스에서 지내던 어느 날 제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시프 코테크가 차이콥스키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에두아르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Lalo: Symphonie Espagnole In D Minor, Op.21)’ 악보를 펼치고 그들은 함께 연주했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기분 때문이었을까? 차이콥스키는 이 바이올린곡에서 큰 영감을 받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던 시련을 털어버리고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칭송받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Violin Concerto D major Op. 35)’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오늘의 추천곡 : 바이올린 협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힌다. ‘멜로디의 왕’이라는 타이틀의 차이콥스키답게 환상적인 선율과 6분가량 총주(總奏)되는 오케스트라는 가히 압권이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화려함에 야성적인 광폭함이 더해져 거칠게 몰아붙이는 느낌이다.

차이콥스키는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할 수 없었기에, 바이올린이란 악기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그는 제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시프 코테크에게 주법이나 특성 등을 물어가며 열정만으로 이 곡을 단숨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