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서도 음식으로 손꼽히는 곳이 전남 강진입니다. 강진읍에는 ‘5대 한정식집’이 있습니다. ‘다강’ ‘예향’ ‘둥지’ ‘해태’ ‘종가집’. 이렇게 다섯입니다. 남도 한정식은 굽고, 찌고, 튀기고, 볶고, 끓이는 거의 모든 조리법을 망라합니다. 한정식으로 이름났다면 그 지역의 전반적인 음식 수준을 인정해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왜 하필 강진일까요. 강진 한정식의 전통을 ‘유배 문화’에서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배 온 양반들이 수라간 궁녀를 데리고 와서 궁중음식을 차려 먹으면서 민간에 퍼졌다는 주장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조선 시대에 강진으로 유배 온 이는 92명. 이 중 최고위직은 차관급인 홍문관을 지낸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만, 이 정도로는 수라간 궁녀를 대동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수 있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웠던 다산은 끼니 걱정을 해야만 하는 신세였으니까요.

강진의 식문화가 발달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일제강점기 두 차례에 걸친 조선총독의 강진 방문이었습니다. 고려 고분 도굴에 관심이 많았던 일제는 고려청자의 본산이었던 강진에 이례적으로 1916년에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을, 1934년에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을 파견했습니다. 총독의 강진 방문은 토호들이 권력 주변 인물들과 인맥을 쌓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총독의 방문을 앞두고 강진 유지들은 서울에서 궁중요리사를 데려와 음식을 준비시켰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강진에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가 전해진 것입니다.

강진을 대표하는 음식은 남도 한정식이지만, 진짜 강진 음식은 따로 있습니다. 도암면 봉황리 주민들이 갯가재를 닮은 갑각류 쏙을 잡아다가 통째로 돌확에 갈아 담그는 ‘쏙젓’은, 강진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음식입니다. 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고, 강진 사람 중에서도 봉황리 주민들만 제맛을 낼 줄 안다는군요. 강진만의 봄 바지락으로 내는 바지락 비빔밥도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맛입니다. 지금 한창인 칠량면 송산마을 찰옥수수의 쫀득한 맛은 또 어떻고요.

내로라하는 이름난 맛집의 인기 메뉴보다, 외딴곳의 허름한 식당에서 받아든 뜻밖의 정성 깃든 밥상이 얼마든지 더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여행에서 음식은 중요한 요소지만, 맹목적인 미식의 욕망 추구는 허망합니다. 여행에서 만나는 타지의 음식을 욕망과 탐닉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 확장의 의미로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떨까요. 조금 더 맛있다는 이유로 한 식당 앞에만 길게 줄을 서는 일에 대해서도 되돌아봤으면 합니다. 음식이 여행을 하는 이유의 맨 앞줄에 적히고, 맛에 대한 탐욕이 과잉이 되고 있는 시대에 해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