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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6·25전쟁 때 구국의 영웅이자 한·미 동맹의 상징이었던 백선엽 장군이 100세의 삶을 마쳤다. 북한 인민군의 기습 남침으로 밀려난 낙동강 전선에서 목숨을 던진 방어전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나라를 구했으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전기를 마련했다. 백 장군이 이승만의 후계자가 되길 미국이 기대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정치에는 눈을 두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사관학교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海戰)과 함께 백 장군의 다부동 전투를 주요 전사(戰史)로 교육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론이 분열된 이 나라는 영웅의 죽음 앞에서도 진영이 나뉘어 감정적인 공과(功過) 논쟁을 벌였다. 백 장군의 삶이 영광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간도특설대에 복무했고, 1980년대에는 동생의 학원 비리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교훈으로 삼으며 후세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실과 국무부가 백 장군 별세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아무런 성명도 발표하지 않았고, 장례식과 영결식에 여권 지도부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애도를 표하거나 조문하지 않았다고 백 장군의 위대한 업적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고, 민주당 지도부가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그가 지키려 했던 자유와 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청와대의 옹졸함과 여당의 편협한 역사관만 부각될 뿐이다.

장례 기간, 장맛비 속에 우산을 들고 몇 시간씩 조문을 기다리던 시민들, 백 장군 영정 앞에서 거수경례하던 노병, 어린 자녀에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나온 엄마들, 이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갈 것이다. 이들이 진짜 애국자다.

백 장군은 대한민국의 생사가 달린 다부동 전투를 앞두고 말했다. “모두 앉아 내 말을 들어라. 그동안 잘 싸워줘서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곳이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지금도 되새겨야 할 의미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