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못해도 사건실체 밝혀야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 막아”

경찰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의혹’과 관련,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법조계에선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공소시효 만료에도 진상규명을 주문한 것에 비춰 검찰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성추행이라는 민감한 사안의 피해를 주장한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 사건사무규칙을 보면 피의자가 사망하거나 피의자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게 된 경우 수사기관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대부분 사회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박 전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피해자(고소인)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는 “처벌할 수 없어도 진상규명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공소시효 만료 등에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과 장자연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주문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 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서울동부지검장을 지낸 석동현 변호사는 13일 “경찰이 관행적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송치하더라도 박 전 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중요한 건 검찰의 의지”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과 장자연 사건 등 공소시효가 끝났어도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가 이뤄졌다”며 “사망했다고 해서 피해 사실과 손해배상 책임 등이 사라지는 게 아닌 만큼 사실관계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처벌만을 목적에 둘 게 아니라 ‘꽃뱀’ 등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는 피해자 명예를 고려했을 때 진상규명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만큼 수사로 사실관계와 죄의 경중 등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반적인 성추행 피소 사건 수사 절차 등에 비춰봤을 때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변호사협회 소속 한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피의자를 불러 조사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현재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피해자 일방의 진술만 확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엄연히 피해자와 의혹이 존재하는 만큼 피의자 사망 이후에도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는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정치적인 논란으로 번지기도 하는 만큼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윤정선·이해완·이희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