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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애들은 없지요? 부부만 들어와야 합니다.” 전세방을 알아보러 가면 처음 묻는 말이자 강다짐이었다. 아이가 많으면 시끄럽고 집이 어질러지며 수돗물도 헤프게 써서 그런다는 게 주인의 핑계다. 1970년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운동이 농촌 마을마다 들불처럼 일어나던 시기. 가장이 식솔을 이끌고 도시로 떠난 고향 마을엔 더러 ‘기러기 아이’들이 있었다. 대개, 향도이농(向都離農)하면서 셋방 정원이 넘쳐 조부모 품에 남겨진 막둥이들이다. 셋방살이의 수모를 겪어본 사람들은 기억한다. 꼭 100년 전인 1920년대 신문에도 ‘비싼 집세에 사글셋방 한 칸이나마 구할 길이 아득하다’거나 ‘사글셋방 하나 변변히 얻어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기는’ 무주택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기사들이 있다. 용어의 이력만큼이나 셋방살이의 설움도 길다.

전세(傳貰)의 대명사 사글세는 삭월세(朔月貰)가 원어다. 집이나 방을 다달이 빌려 쓰는 일, 또는 그 돈을 가리킨다. 월세를 받고 빌려 주는 방, 또는 월세를 주고 빌려 쓰는 방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요즘의 월세와 비슷한 말이다. 다만, 월세는 다달이 방세를 내는 방식 한 가지뿐인 데 비해 사글세는 월세란 뜻 외에, 열 달 치 월세를 한꺼번에 주인에게 맡긴 다음 기한이 차면 방을 비워주는 방식도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매월 사그라지는 세(貰)라는 점에서, 요즘으로 치면 ‘역(逆)모기지 전세’ 형태다.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는 서양에는 없는 방식이다. 서양에서는 자가(自家) 아니면 대개 월세 형태로 임대차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글세는 우리나라만의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1번째 대책으로도 집값 폭등세가 가라앉지 않자 정부가 더 강력한 종합부동산세·양도세 중과(重課) 처방을 검토한단다. 강남 투기꾼 잡으려다 사글셋방살이하는 ‘가재·붕어·개구리’(가붕개)들만 잡았다. 내 집 마련 꿈을 잃은 20·30대, 대출 사다리 끊긴 40대, 보유·양도세 폭탄 맞은 은퇴세대 모두 “이생망”(이번 생은 망쳤다)이라 절규한다. 이제 가붕개들은 편안한 ‘내 집’에서 용꿈은커녕 개꿈도 꾸기 어렵게 됐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도 전세 입주자다. 5년 계약이지만 전셋돈만 안 낼 뿐 약정 기간 5년이 차면 푸른기와집을 비워줘야 하는. 진심으로 동병상련하는 위정자라면 이생망 가붕개들의 분노를 더 키우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