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갑질’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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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하노이 결렬 뒤 北 예정된 도발
핵 없는 南에 독자적 지원 겁박
美와는 비핵화 대신 군축 협상

김여정 거친 담화는 자아비판
평양에 군부 강경파 입김 강화
도발하면 강력 응징 결기 필요

북한의 도발은 예정돼 있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감춰뒀던 진짜 카드를 하나씩 꺼내는 것이다.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확성기·삐라 전(戰)’은 보류했지만, 계속 도발 수위를 높일 것이다. 북한의 목표는 무엇일까? 북한 내부 불만 밖으로 돌리기,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위상 올리기, 문재인 정권에 속았다는 분풀이 등 여러 측면이 내포된 도발이겠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한국·미국과 관련한 더 중요한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첫째, 북한은 ‘핵(核) 갑질’을 시작한 것이다.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김여정 등의 언어가 너무 거칠다. 외교적 용어가 아니라 시정잡배가 칼을 들고 선량한 사람을 협박할 때 쓰는 말투인데, 실제 상황도 그렇다. 북한은 이미 6차례 핵실험을 끝냈고, 핵탄두를 탑재하고 사드를 회피할 수 있는 단거리 신형 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까지 개발했다. 재래식 군사 전력은 남한이 훨씬 강하지만, 핵폭탄 한 방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꼼짝 말고 평양에서 시키는 대로 제재 완화와 식량 지원을 하라는 뜻이다. 북한은 한국을 완전히 길들이기 위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보다 수위가 높으면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도발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그러나 북한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를 우습게 볼 수는 있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쉽게 보면 큰코다친다. 북한이 무력으로 도발하면, 즉각 궤멸시킬 정도의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다수 국민의 강한 결기가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둘째, 북한은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당국자가 이미 공개적으로 ‘비핵화는 ×소리’라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지난 15일 북한이 30∼4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올해 100개까지 보유할 수 있다는 분석을 지난해 발표했다. 핵탄두 수십 개가 넘으면, 미국이 일일이 찾아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등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북한은 플루토늄·고농축우라늄탄뿐만 아니라 수소폭탄까지 실험했고,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도 막바지다.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되든, 조 바이든이 당선되든 북한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 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김정은 스스로 핵보유국의 길을 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향후 한국을 배제하고 미·중·러 등 동북아 핵보유국들과의 군축 등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 등이 응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과의 핵 협상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제재는 강화될 것이고 경제적 어려움은 커진다. 북한은 1년에 최소 650만t의 식량이 필요한데, 지난해 생산량은 450만t 정도라고 한다. 최근 중국이 북한에 식량 80만t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포기하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김여정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는 것인가. 오히려 불안정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문 정권에서 평양 사정에 가장 정통한 소식통은 최근 김여정의 거친 담화가 ‘자아비판서’라고 분석했다. 김여정은 2018년 4·27 판문점, 9월 평양 정상회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8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다녀간 뒤 김정은에게 “문 대통령은 믿을 만한 것 같다”고 말하고, 그의 능라도 5·1 경기장 대중 연설을 추진했다. 4·27 합의문의 김정은 서울 답방도 김영철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여정이 강력히 주장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파탄 나면서 김여정이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위기에 몰렸던 김영철이 재등장하고, 그의 측근 리선권이 외무상에 기용된 것으로 볼 때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강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 관리 측면에서만 볼 때 김정은 체제의 안정이 유익한 측면이 있다. 남북 관계에서는 작은 것에 집착하다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문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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