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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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개는 인간의 절친(Man’s best friend)이다. 가축이 된 지 10만 년이라는 생물 계통도가 사람의 친구(親舊)임을 보증해 준다. 미·일·중·러 나라에 따라 도그(dog), 이누(犬), 취안(犬)·거우(狗), 사바카(sabaka)로 그 이름은 달라도 상징성은 비슷하다. 그렇지만 개를 사람에 비유할 때는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견마지로(犬馬之勞)나 폐풍월(吠風月)처럼 긍정적인 뜻이 있는가 하면, 색정남녀나 앞잡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에서는 개를 애완동물로, 또 반려동물로 신분 상승시켜 오늘에는 사람과 같이 대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개는 여전히 단고기의 재료인 가축 수준에 머물러 있다. 평양에서 특정인을 가리켜 개라고 하면 ‘∼의 앞잡이’라는 욕설이다. 특별한 경우 개라는 우리말을 쓰지 않고 러시아어를 써서 ‘사바카’라고도 한다. ‘소련의 앞잡이’라는 뜻으로 저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다. 다만, 사바카동무라고 하면 색(色)을 밝히는 사람이란 뜻으로 통한다. 이러니 북한의 견공은 신분도 상징도 가장 밑바닥이다.

폐쇄 계급사회 북한에서는 상대방을 욕할 때 종종 개를 내세운다. 2017년 9월과 2019년 8월, 지난 3월엔 청와대 등을 향해 ‘겁먹은 개’ 운운하더니, 지난 7일 노동신문은 탈북자들을 ‘제일 추하고 께끈한 천하의 똥개무리’라고 상욕을 퍼부었다. ‘께끈하다’는 더럽다는 뜻의 평안도·함경도 방언이다. 대북 전단을 트집 잡아 하루가 멀다 하고 대남 압박을 가하는 북한의 선전 매체들은 개만 동원하는 게 아니다. 죽(粥)도 밥맛없게 만들었다. 지난 16일 자 노동신문은 ‘인간쓰레기들을 죽탕쳐(짓이겨)버릴 멸적의 의지로 심장을 끓이며…’ 하면서 적의(敵意)를 다잡는 발언까지 쏟아냈다.

최고 권력자의 담화 한 번에 그 졸개들이 개떼처럼 나서서 남산에 걸린 달 보고 개 짖듯 짖어댄다. 삶은 소대가리 앙천대소 운운하던 북한의 선전 도구들은 철면피, 바보, 저능한 사고방식, 세 살 아이 등의 무례한 상말도 서슴없이 퍼부었다. 그러더니 피바다니 불바다니 하는 섬뜩한 전투적 용어들까지 쏟아낸다. 끝없는 충성 경쟁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런 ‘말 폭탄’이 아니라, 실제 총포가 될 수도 있다. 적군들은 벌써 총에 대검(大劍)을 꽂고 위압적 시위를 하고 있다. 벗어 놓았던 철모를 찾아 쓰고 풀어 뒀던 탄띠를 졸라맬 때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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