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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지난 1일 교보문고가 있는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벽의 광화문글판에 새롭게 올라온 글귀입니다. 백무산 시인의 시 ‘정지의 힘’에 나오는 글입니다. 교보생명은 선정 이유에 대해 “멈춰 있는 것 같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리는 씨앗처럼, 누구에게나 도약을 위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함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온 세계, 모든 이의 일상을 멈추게 한 것 같은 요즈음 분위기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힘든 이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거라는. 삶의 조건을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잡아 보라는 조언으로도 들립니다.

미국에서 ‘강연하는 의사’로 알려진 앤서니 T 디베네뎃의 신간 ‘유쾌함의 기술’(원제 ‘Playful Intelligence’·김유미 옮김·다산초당)도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저자의 탐구는 왜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의 유쾌함을 잃어버리는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성인의 삶에 부족한 것은 ‘놀이(play)’라는 행동이 아니라, 유쾌함을 느끼게 하는 ‘유희성(playfulness)’이라는 행동 양식임을 지적합니다.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경이감의 시작점을 낮추라”는 조언입니다.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의미 있게 다가와 우리를 멈추게 할 때 우리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데, 이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경이감입니다.

중요한 점은 경이감을 느끼고 안 느끼고는 우리가 경험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작고, 평범하고, 심지어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경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얘깁니다. 단지 성인이 되면서 경이감을 느끼는 시작점이 너무 높아졌을 뿐. 저자는 경이감의 시작점을 낮추기 위해 삶의 속도를 늦출 것과 삶을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을 조언합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이미 여러 번의 경이로운 경험을 무심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백 년의 산업화에 몸살을 앓아온 지구가 불과 몇 달 만에 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 의료진과 택배 노동자 등의 사투가 이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일상 자체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