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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해마다 6·25전쟁 기념일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에게 더 각별하게 들리는 명곡이 적지 않다. 이해연 노래로 1956년 발표된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도 그중 하나다. 1951년 ‘1·4 후퇴’ 후 잿더미로 변한 서울로 돌아왔는데, 미처 탈출하지 못했던 부인은 영양실조로 누워 있고, 딸은 이미 숨져 입은 옷 그대로 언 땅에 묻어야 했던 참혹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가사다. 본명이 박창오로, 가수 예명은 진방남인 작사가 예명 반야월이 썼다. 그 애절한 노래의 작곡가가 ‘한국 가요계의 슈베르트’로 불린 이재호(1919∼1960)다. 그를 기리는 노래비는 서울 미아리고개 외에도 전국 곳곳에 건립됐다. 부산 용두산공원 아래 ‘경상도 아가씨’, 경북 성주의 ‘나그네 설움’, 충북 청주의 ‘산장의 여인’ 등의 노래비다.

그가 작곡해 고운봉이 부른 ‘남강의 추억’을 새긴 노래비는 경남 진주 진양호공원에 1972년 건립됐다. ‘보아라 하늘 높이 솟은 지리산’ 하고 시작하는 자신의 모교 진주중 교가도 작곡한 그는 1947년부터 한동안 진주고 음악교사로도 재직했다. 당시 학생이던 이봉조는 그의 영향으로 작곡의 길을 걷게 됐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본명이 이삼동인 이재호는 일본 우에노음악학교에 유학해 바이올린을 전공하다가 폐결핵 악화로 귀국한 뒤, 1938년 예명 무적인(霧笛人)으로 작곡한 ‘항구에서 항구로’ 등이 큰 인기를 모았다. 1939년 예명을 바꾼 후 내놓은 노래는 거의 모두 한국 가요사의 눈부신 성취로 평가받았다. 전쟁이 끝났어도 여전히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이 많고, 슬픈 사랑의 역사도 이어진다는 취지로, 그가 작사까지 직접 해 손인호에게 부르게 한 ‘울어라 기타 줄아’(1957년)도 그런 노래다. ‘어머님 사랑’ ‘고향에 찾아와도’ ‘귀국선’ ‘대지의 항구’ ‘번지 없는 주막’ ‘산유화’ ‘불효자는 웁니다’ ‘물방아 도는 내력’ ‘망향초 사랑’ 등도 마찬가지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지난해 TV조선 ‘미스 트롯’ 경연 결승에서 송가인이 절창한 후, 젊은층에까지 더 널리 알려졌다. ‘이재호 곡은 국민 마음속에 스며 흘러 강이 됐다’는 찬사가 나오기도 했던 그를 두고 반야월은 이렇게 기억했었다. “평소엔 말이 없고 우수(憂愁)에 차 있는 듯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야 말문을 열곤 했다.” 그런 그의 명곡들이 끊임없이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