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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베이징 특파원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온 중국 학자가 최근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과 비핵화를 이룰 두 번의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2월 29일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이뤄진 이른바 ‘윤일협약(leap day agreement)’에서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중단, 영변 우라늄 활동 중단 및 감시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북한의 우주 계획에 대한 권리 주장과 이에 따른 로켓 발사로 결국 무너졌다. 지난해 2월 27∼28일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도 좋은 기회가 있었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한 가지 정도를 더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영변만 폐기하면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만 믿고 나온 김 위원장은 너무 당황했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작다는 불만을 가졌고, 그래서 1년 넘게 삐져 있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하려고 해도 둘 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도 북핵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1∼2년간 또 뒤로 미뤄질 수 있다.”

이 학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 위원장의 오판 때문에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거래하려 했던 미국이 지금은 ‘현상 유지(status quo)’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중국은 북한 비핵화 원칙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서도 “북한이 중국에 기울고 중국도 북한을 지지하는 관계에서는 아무래도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중국의 ‘딜레마’를 토로했다. 사실 미국도, 중국도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를 시끄럽게만 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가 나쁠 게 없다.

가장 아쉬운 사람은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고강도 대남 압박 속에 미·북 관계 교착과 대북 제재 유지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은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화 원칙을 내세우면서 “남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포함해 이날 여권에서는 ‘비핵화’라는 단어가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평소 강조하는 ‘평화가 경제다’를 실현하려면 금강산 개별관광 등 ‘돌파구’만으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려야 가능한 개성공단 재가동, 남북 철도·도로 등 인프라 건설은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서는 도저히 진행될 수 없는 사업들이다. 북한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리선권 외무상은 지난 12일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보다 확실한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고, 권정근 외무성 국장은 다음 날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했다.

마침 북한 핵탄두가 올해 1월 기준 지난해보다 10개 늘어난 30∼40개로 추정된다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발표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진정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 나서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북한에 비핵화를 위한 협상에 성실히 나서라고 촉구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국회 비준을 강조하는 4·27 판문점 선언에도 ‘남북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공동 노력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