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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문화부 차장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점·출판업계에 또 하나의 충격이 닥쳤다. 국내 2위 서적 도매업체 인터파크송인서적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 장래가 불투명해졌다. 지난 2017년 송인서적이 부도났을 때처럼 상당수의 출판사와 서점이 사실상 돈을 떼일 수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인터파크의 인수와 추가 투자에도 거듭 위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 크다. 중소형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도매업체의 위기는 곧 지역 서점, 동네 서점이 생존의 위기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와 별개로 중소형 지역·동네 서점들은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 밀려 고사 직전에 놓여 있었다”며 당장 서점업계의 양극화를 넘어서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실제로 서점업계의 양극화는 단지 ‘덩치의 차이’가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6개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예스24·알라딘·인터파크 도서부문 등 온라인 전문 3사, 교보·영풍·서울문고 등 온·오프라인 병행 3사)과 중소형 지역·동네 서점의 가장 큰 격차는 ‘속도’다. 2014년 도서정가제 강화로 가격 경쟁력 차이는 거의 사라졌지만, 독자가 원하는 책을 그 손에 쥐여주기까지 소요시간은 여전히 큰 차이가 난다. 대형 서점들은 주문에서 배송까지 하루, 길어야 사흘 정도 걸리는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 예스24는 그 시간을 더 단축하기 위해 도서 재고량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자동발주 시스템을 갖춰놨다. 교보문고와 인터파크 도서부문은 지난달부터 독자가 책을 주문하면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는 ‘새벽 배송’ 서비스에 들어갔다. 유통망의 불리함은 독자의 요구를 파악하는 정보력의 격차로도 이어진다. 이 때문에 베스트셀러의 경우 지역·동네 서점 판매대에 책이 깔릴 때쯤이면 이미 온라인을 통해 대부분의 판매가 이뤄진 일이 부지기수다.

지역·동네 서점들이 하나같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는 말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니다. 온라인·비대면 쇼핑 확대와 전자책(e북) 위상 강화 같은 라이프스타일 변화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역·동네 서점은 단지 책을 사고파는 곳만이 아닌, 주민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각종 강좌나 이벤트로 문화적 거점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지역·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자는 내용의 ‘바이 북 + 바이 로컬(Buy Book + Buy Local)’ 운동과 같은 민간 차원의 노력에만 기대해서도 안 된다. 책, 그리고 책이 실어나르는 지식 담론의 공공성을 감안해 정부 등 공공부문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지역·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착한 책 사기’ 운동을 유도하는 것, 정부가 신문유통원처럼 공공성을 띤 도서 유통망 구축을 지원하는 것, 영화진흥기금·언론진흥기금 등과 같은 출판진흥기금을 조성하는 것 등 아이디어는 넘쳐난다.

지역·동네 서점의 위기를 보며 정부 정책 입안자들과 국회의원들에게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쓴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서문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지혜의 공간’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왜 서점의 붕괴를 방관해선 안 되는지 잘 보여준다. “서점은 공공공간이다. 공공자산이다. 나라와 사회를 더 도덕적이고 더 정의롭게 일으켜 세우는 인프라다. 민주주의의 기초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