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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發 개도국 경제 휘청

선진국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대량 해고 직격탄에 생계 위협
본국 가족에게 돈 못보내 고통

올 저소득국가 송금액 추정치
4450억달러…작년比 19.7%↓

주요국 외국인 입국 규제 강화
일자리 얻기도 쉽지않아 막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개발도상국의 ‘송금 경제(Remittance Economy)’가 휘청이고 있다. 송금 경제란 해외로 나가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보내온 돈을 기반으로 굴러가는 경제를 뜻하는데,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송금액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큰 규모의 금융 유입 중 하나다. 작은 나라일수록 송금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코로나19로 이주노동자의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빈국들의 ‘경제적 생명선’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11일 CNN 등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사이풀 이슬람(25) 씨는 바레인에서 4년 넘게 건설 노동자로 일하면서 수입의 절반을 나이 든 부모와 가족들에게 보내왔다. 하지만 올해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사업장이 폐쇄되면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집에 돈을 못 보내 가족들이 음식을 살 수 없을 만큼 고통받고 있다”며 “부모님이 더 이상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슬람 씨 가족뿐이 아니다. 주로 선진국에서 일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미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대량 해고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의 실직은 고향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세계은행(WB)은 올해 중·저소득 국가로 향하는 송금액이 전년보다 19.7% 감소한 4450억 달러(약 530조 원)에 그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해당 감소 폭은 WB가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가장 큰 수치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감소 폭(5%)보다 4배가량 크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필수 자금원 1000억 달러(119조 원)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CNN은 설명했다.

지난 20년 동안 개발도상국의 송금 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9명 중 1명꼴인 약 8억 명이 송금을 통해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세계적으로 저임금 일자리가 늘었고, 이는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본국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2000년 750억 달러(90조 원) 수준이었던 중·저소득 국가 송금 유입액은 지난해 5540억 달러(66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8.9% 수준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직접투자(FDI)보다 앞선다.

이 때문에 송금 경제 위축은 개발도상국의 전체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WB는 지난 8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 수준인 -5.2%로 전망했고, 특히 저소득 국가일수록 ‘코로나19 쇼크’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선진국의 봉쇄령으로 글로벌 수요·공급 충격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은 해외송금, 국제 교역, 관광업 등의 위축으로 자본 유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필오버(spillover·파급) 효과’다.

WB의 송금 부문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딜립 라타는 “송금 경제는 개발도상국의 아주 중요한 경제적 생명선”이라며 “나라가 가난하고, 작을수록 송금 의존도가 커진다”고 설명한다. 아이티, 남수단, 통가 등 아프리카 작은 국가의 경우 송금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동남아시아, 남미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필리핀의 경우 지난해 해외송금 유입액은 약 40조2335억 원(335억 달러)으로 GDP의 10%에 이른다. 미국 싱크탱크 미주간대화(IAD)는 “올해 남미 국가들의 해외송금 유입액이 전년 대비 7∼1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멕시코 미초아칸주의 경우 전체 450만 명 중 절반이 해외송금 수혜자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 6일 미국 내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상황이 어렵겠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잊어선 안 된다”며 본국 송금을 중단하지 말라고 호소했을 정도다.

하지만 해외 이주노동자들의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주로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집단감염에 취약한 데다, 신분상 문제나 경제적 이유로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방역 선진국’으로 꼽히던 싱가포르의 경우 봉쇄를 완화했다가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감염 사례가 잇따르면서 다시 고삐를 조인 바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19 경제 대응책으로 주요 국가가 실시하고 있는 재난지원금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당장 일자리 걱정부터 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언택트(Untact·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면 이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 서비스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각종 사업에서 자동화가 본격화되면 “청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국가들이 이주노동자와 이민자들에게 ‘빗장’을 더욱 걸어 잠그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코로나19로 대량 실업·휴업 사태가 발생하자 외국인 이민자 입국을 일시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가 정상화되면 ‘미국인들에게 최우선으로 일자리를 주겠다’고 선언, 이민자들이 건국한 미국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거 추방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