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NC의 조민기 통역이 9일 창원NC파크에서 마이크 라이트(왼쪽), 드류 루친스키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활짝 웃고 있다. NC 제공

■ NC 통역담당 ‘조민기 24시’

美서 태어나 한국서 대학 졸업
뮤지컬·CF 등 연기 생활하다
2018년 NC 통역 시험 합격

감독 지시 간결한 전달 주임무
유니폼 챙기고 식당 예약까지
토스볼 하다 공에 맞은 적도

“올 우승 반지 손가락에 끼고
내년 용병 전원 재계약이 꿈”

NC 야구단의 조민기(31) 통역은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배우 출신이다. 통역은 외국인 선수와 늘 함께한다. 미국식 생활습관, 문화에 익숙하고 표현과 전달력이 뛰어나기에 외국인 선수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조 통역은 1989년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하고 2006년 귀국했다. 그의 부친은 국내 공중파 방송사 영상취재기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국내 공중파 방송국 스포츠국 영상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카메라 세팅, 화이트밸런스 맞추기 등을 익혔지만 늘 답답했다. 타고난 ‘끼’ 때문. 카메라를 만지고, 촬영하기보다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연기자가 되기 위해 서울예대 연기학과에 입학했다. 서울예대 졸업 이후 뮤지컬, CF에 단역, 조연으로 출연했다. 2013년에는 케이블 채널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푸른거탑’에 중대장으로 등장했다. 극의 재미를 더하는 단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단역 배우로는 먹고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매니저, 유튜버 촬영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렸고 지금은 야구장으로 출근한다. 연기자의 꿈은 버렸지만, 프로야구의 구성원이 됐다는 자부심에 하루하루가 신난다. 더군다나 NC가 1위를 달리고 있으니 하늘을 펄펄 나는 기분이다.

2018년 NC 야구단 통역 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조 통역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고, 더 잃을 게 없으니 한번 응시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뽑혔다”면서 “남들 앞에서 얘기하고, 대중을 리드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는데 프로스포츠 통역이란 직업은 이런 성향에 적합하다”고 귀띔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드라마 ‘푸른거탑’에 출연했던 조민기.

NC의 구성원이 된 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숙소에서 선수단과 상견례를 했다. 조 통역의 첫인사는 강렬했다. 조 통역은 “상견례에서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불렀다”며 “강도 높은 훈련을 앞둔 선수단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조민기라는 이름을 단번에 ‘입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영어 실력이야 원주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통역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프로야구 통역에겐 감독, 코칭스태프의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간결하게, 빠르게 외국인 선수에게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울러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의 하모니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와의 친밀감 형성도 무척 중요하다. 그는 배우 출신이며, 흥이 넘치는 성격이기에 프로야구 통역으론 100점짜리다.

조 통역은 “업무 특성상 더그아웃에 앉고, 코칭스태프 미팅에 참석하며 감독, 투수코치와 함께 마운드로 갈 때도 있다”면서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선수단과 늘 함께하기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는 팀당 3명씩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다. 궂은일도 많다. 외국인 선수의 유니폼과 신발을 챙기는 건 일과 중 하나. 잘 먹어야 힘을 잘 쓰니 식당도 안내하고 예약한다. 불평불만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한다. 통역이면서, 이국 생활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한적할 땐 ‘관광 가이드’로 변신, 외국인 선수에게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알린다. 한국 문화, 사고방식을 설명하면서 ‘친한파’로 유도한다.

조 통역은 “잠잘 때를 빼놓곤 외국인 선수 곁에 늘 붙어 있는 셈”이라면서 “그래서 24시간이 항상 짧게 느껴지지만, 외국인 선수가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고 동료들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걸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건너온 외국인 선수는 대개 독특한 버릇이 있다. 지난해까지 NC에 머물렀던 재비어 스크럭스는 경기에 앞서 꼭 토스볼 타격훈련을 했고 조 통역이 도왔다. 그는 “토스볼 훈련 장비를 다 준비하고 스크럭스에게 공을 토스하다 타구에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조 통역은 “태어나서 타구에 얻어맞은 건 처음이었다”면서 “그 뒤 타격코치로부터 토스하는 요령을 배웠고, 지금은 기가 막히게 공을 토스한다”고 덧붙였다.

조 통역은 이제 훌륭한 프런트가 되는 걸 목표로 삼는다. 운영팀에 소속돼 통역 외에 국제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스프링캠프 훈련구장과 호텔 예약 및 계약, 항공권 확보 등을 처리한다. 티 안 나는 일이지만, 스프링캠프는 1년 ‘농사’를 좌우한다. 조 통역은 “스프링캠프 마련, 운영에 하자가 발생하면 80여 명이 고생하게 된다”면서 “올해는 스프링캠프 훈련 성과가 좋았고, 정규리그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어 참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2013년 1군에 데뷔한 NC는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조 통역은 “3년 차인데, 올해는 꼭 우승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싶다”면서 “NC가 우승하고, 외국인 선수 전원이 내년에 재계약한다면 통역 조민기는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원=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