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원희룡(오른쪽) 제주지사와 김재섭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보수 혁신 좌담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선규 기자

■ ‘보수 재건, 어떻게 할 것인가’

좌담 = 원희룡 제주지사·김재섭 통합당 비대위원

미래통합당 ‘구원 투수’로 등판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파괴적 혁신’을 주창하면서 보수 혁신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문화일보는 2022년 대통령 선거 도전을 선언한 원희룡 제주지사와 청년 정치인으로 통합당 지도부에 합류한 김재섭 비대위원을 만나 보수 혁신의 방향과 방법 등을 들었다. 이들은 “보수 정치가 실패한 것이지, 보수 가치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 지사는 보수의 위기가 발생한 원인으로 ‘보수 정치의 역동성 상실’을 꼽았고, 김 비대위원은 ‘소통 능력의 부재’를 지적했다. 두 사람은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을 전제로, 보수의 현실 문제 해결 능력을 되살리는 게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원 지사는 “시대의 도전을 이끌었던 보수의 유전자와 문제 해결능력, 경험을 오늘에 맞게 대중적 감성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고, 김 비대위원은 “과거의 이벤트나 어떤 신화적 인물을 자꾸 소환할 게 아니라, 국정을 운영하고 경제를 발전시켰던 능력을 우리 정당에 이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회 = 총선 이후 한국 정치 지형이 바뀌었다며 보수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김재섭 비대위원(이하 김) = 선거에 참패하긴 했지만, 보수에 불리한 지형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식 공정, 평등 같은 것으로 인해 소외되는 계층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사람을 품지 못했다는 것이 제일 큰 패배 이유라고 생각한다.

△원희룡 제주지사(이하 원) =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부터 4연패를 했으니 심각하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 지형이 바뀌어서 이제는 우리가 진보를 따라가야 하거나 아니면 보수가 대한민국에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보수 정치의 실패지 대한민국의 날개로서 보수의 실패는 아니다. 보수는 6·25전쟁 이후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성장 기초 위에서 의료보험, 북방외교, 금융실명제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그 시대에 맞는 거대하고 담대한 변화는 보수가 이끌었다. 이러한 역동성이 보수의 역사고 보수의 DNA다. 그러나 정치의 실패 때문에 보수의 역동성을 잃고 지난 10년 동안 추락을 거듭해서 대안세력이 될 수 있을지의 자격까지 국민이 부정하는 상황에 왔다.

△김 = 보수라는 가치가 퇴색한 것은 아니다. 진보가 던진 문제를 완성하는 게 보수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남북대화 역시 보수가 해야 동의를 받을 수 있다. 보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진보의 어젠다는 공허한 메아리밖에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자유, 기회균등 등 보수가 지향할 가치는 희석되지 않는다고 본다.

△원 = 진보는 정치 캠페인으로 지금까지 성공했지만, 실제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보수는 정치적으로 실패했지만, 실질적인 해법과 능력을 제시할 수 있다. 이기는 보수, 유능한 보수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다만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굶고 피해를 당하는 데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차가운 시장경제 만능주의만 이야기하면 백전백패다. 이제는 국민이 아파하는 것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면 닦아줄 수 있는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자원이 부족하니 현실적으로 한정된 자원에서 방법은 한계가 있지만, 국민을 이해시키면서 보듬어가는 게 보수다. 또 하나 박근혜 정권 때 문제가 됐던 게 공공재의 사유화다. 국가권력의 사유화, 공직의 사유화 등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국민이 통합당에 보여주는 적대감의 근원은 공공재를 사적으로 변질시킨 것, 자유·공정·책임이라는 보수주의 가치 자체를 스스로 훼손한 것, 국민과 공감하는 능력의 부족, 이 세 가지에서 나온다고 본다.

△사회 = 공정과 보수는 등치가 잘 안 된다.

△김 = 공정이라는 가치를 말할 때 보수정당이 가장 비판받는 부분이 기득권을 지키는 정당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근데 전 보수정당은 ‘기득권 지키는 정당’이 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여기서 기득권이라는 건 천년만년 절대 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말한다. 진보진영에서 말한 공정이라는 개념은 평등에 너무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정당한 노력의 산물을 지키는 공정은 빠져 있다. 위선적 평등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를 잘 보장하면서 약자를 보듬을 수 있는 공정 개념을 보수진영에서도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 = 공정은 보수주의 구현의 핵심 수단이다. 현재 공정을 가장 파괴하는 것은 친문(친문재인)·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생)와 민주노총의 기득권 동맹이다. 이들의 위선으로부터 ‘공정’의 가치를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보수의 가치로 자유만 강조하면 타고난 소질과 여건, 환경이 다르기에 결과에서 불평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의 접근은 기회에 있어 평등을 실질적으로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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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진중권 전 교수가 토론회에서 아직까지 박정희에게 기대고 있는 통합당을 비판했다.

△김 = 박정희 같은 인물이나, 금융실명제라는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유능함을 이어가야 한다. 과거의 이벤트나 어떤 신화적 인물을 자꾸 소환할 게 아니라 그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경제를 발전시켰던 능력을 우리 정당에 이식해야 한다. 민주당은 선거에 탁월하다. 갈등을 지적하고 이슈를 만드는 데는 강하다. 하지만 국정 운영에서는 상당히 부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부분이 민주당과 차별점을 보일 수 있는 지점이다.

△원 = 공(功)은 이어가고 과(過)는 인정하고 재발 방지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성취를 오늘의 언어, 오늘의 감성으로 살려야 한다. 70년 전 전설로 얘기하니 다가오지 않고, 그 자체로 벌써 낡음이 된다. 낡음과 새로움이 대결하면 낡음이 패한다. 시대의 도전을 이끌었던 보수의 유전자와 문제 해결능력, 경험을 오늘에 맞게 대중적 감성으로 풀어내야 한다. ‘라떼는 말이야’ 식의 수직적 ‘꼰대’ 의식도 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열린 사고다.

△사회 = 통합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김 =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당은 ‘너희가 그런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비판을 받는다. 현장을 다니면 ‘통합당은 5·18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 민주화를 인정하지 않는 당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역사가 된 과거의 일을 가져와서 싸우자고 드는 건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다. 국민은 ‘참 눈치 없네’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원 = 우선 우리 자신의 오점을 걷어내야 한다. 탄핵까지 당하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 저건 아니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걸 뭉갠다면 결국 국민 뜻에 불복한다는 것밖에 안 된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 또 도덕적 기준이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감수성이 전혀 다른 집단이라는 낙인 효과가 상당하다. 진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사회 = 보수 혁신을 얘기하는 건 결국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거라고 생각한다. 2022년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김 = 개인의 고유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2022년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막연하기는 한데, 개인화가 심화되며 맞춤형으로 제품 트렌드가 변화했다. 정책 역시도 개인에게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보를 예로 든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방이 아니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위기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안보가 필요하다. 노동이라는 개념 역시도 제조업 중심, 노조 중심의 획일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 형태가 많이 변했고, 다양한 직업이 쏟아져 나왔다. 집단 안에서만 규정됐던 개인이 그 자체로 조명받는 시대다. 개인의 고유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도록 기반을 깔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쩌면 시대정신이라는 거창한 개념이 등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원 = 코로나19의 여파, 경제 위기가 2022년까지도 관통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이 생존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제 회복뿐 아니라 경제 위기에서 오는 사회적 위험, 시대적인 위험에서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코로나 이후의 새 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쩌면 2020년부터 비로소 21세기가 시작됐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시대정신일 것이다.

사회=조성진 정치부 차장, 정리=이후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