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방송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다가 잠시 멍해졌습니다. 극 중 캠핑을 즐기는 송화(전미도)는 장작 거치대를 샀다며 자랑하죠. 그의 친구 익준(조정석)은 “이게 왜 필요해. 바닥에 놓으면 되잖아”라고 의아하다는 빛을 보였는데요. 송화는 “날 위해 샀어. 날 위해 그냥 샀어”라고 답하면서 익준에게 “너는, 널 위해 너한테 뭘 해주냐고?”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저에게 적용하니 쉽게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두 아이를 키우며 쏟아붓는 양육비는 적잖은데, 정작 ‘날 위해 쓴 돈은 뭘까?’라는 간단한 질문 앞에서 말문이 턱 막혔죠. 코로나19로 인해 생계와 고용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런 질문조차 사치스럽다고 느끼며 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가 적잖을 겁니다.

지난주에는 동네 주민인 방송인이자 작가 A를 만났습니다. 백숙을 먹으며 그는 ‘회장’이라 불리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줬죠. 자산이 1000억 원쯤 된다는 그 지인은 은퇴한 후 아주 따분하다고 합니다. 돈은 많은데, 평생 그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죠. 이 방송인은 “모아놓은 돈은 내가 더 적지만 쓴 돈은 내가 더 많을 것”이라며 “그동안 ‘번 게’ 내 돈이 아니라 ‘쓴 게’ 내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비의 즐거움을 아는 A는 스킨스쿠버, 클라이밍, 복싱 등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마주한 바텐더와 술의 역사에 대해 논하며 맛을 음미할 정도로 해박하죠. 저 역시 소비의 유희를 몰라, 그런 A의 즐거움을 부러워할 따름입니다.

소비. 사라질 ‘소(消)’에 쓸 ‘비(費)’를 씁니다. ‘써서 없앰’ 정도로 직역할 수 있죠. 하지만 소비라는 녀석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풀이입니다. 가성비 좋은 음식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었을 때, 출시를 기다리던 물건을 품에 안았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쉬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최근 전 국민은 긴급재난지원금 40만∼100만 원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돈으로 바르는 탈모제 등을 구입하며 “적극적으로 소비해달라”고 했던 최문순 강원지사가 인상적인데요. 과소비가 아니라면 소비는 정말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을 갖고 ‘나를 위한 소비’를 해보면 어떨까요? 그로 인한 만족감이 크다면,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타인의 소비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하고 나무라기보다는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자세도 필요한데요. 앞서 언급했던 익준은 장작 거치대로 인한 기쁨을 말하며 “나 이거 살 때 엄청 행복했다”는 송화를 향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았어.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