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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방방 / 최민지 지음／미디어창비

그림책 작가는 까다롭게 제한된 크기의 공간에 자신의 상상을 담아야 한다. 지정된 규격의 기계를 통과하는 인쇄 공정을 거쳐야만 작업이 끝나는 출판물이기 때문에 더 크게 그리고 싶어도 뾰족한 수가 없다. 펼치거나 접고 붙이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나무의 기나긴 일생을 표현한 배유정의 아코디언 그림책 ‘나무, 춤춘다’는 전체 길이가 15m나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화폭이라는 물리적 제약 속에서 일정 규모 이상을 그려내는 건 애당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책은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겠다. 서사와 글 텍스트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크기는 무궁무진하며 상상하는 만큼 부풀고 솟아오르고 늘어난다. 이수지의 ‘검은 새’에서 커다란 발톱으로 땅을 디디고 선 검은 새의 몸통 일부가 나타났을 때 어린이들은 움츠린다.

하지만 곧 그 새와 주인공 사이에 믿음이 자라나는 걸 보면서 독자는 자신이 신뢰하는 크기만큼의 아주 웅장한 검은 새를 상상해버린다.

최민지는 서사의 긴장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그림책 작가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에 문장과 낱말이 어떻게 생기를 불어넣는지도 잘 안다.

‘문어 목욕탕’에서 “난 엄마가 없으니까”라는 구절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이 작가에게 졌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이 숨어들었던 먹물탕은 깨끗해지기 위해 찾는 목욕탕과 대척점에 있는 이미지다. 이 과감함은 서사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온다. ‘(엄마가 있는 아이들은) 깨끗하다’는 말 안에 깃든 편견까지 깨뜨리는 것이다.

신작 ‘마법의 방방’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심심함이 우주 끝까지 다다른 어린이 독자들에게 “펼치시오.” “넘기시오.” “오시오.”로 이어지는 무뚝뚝한 운율의 명령문을 건넨다. 기적에 대한 의심의 공식은 관습을 닮았지만 그 관습을 걷어찬 주인공은 은하계 너머까지 날아오른다.

행성별로 심심한 아이의 숫자를 조사한 통계에서 ‘반성’이나 ‘인간성’이 하위권, 지구가 1위였다는 건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모자와 안경은 방방이가 맡아주는 것도 상냥하다. 아슬아슬함은 글이 해냈다면 안도감은 쾌활한 그림이 맡았다.

놀다 오려면 이 정도 스케일은 되어야 한다고, 읽는 어린이들마다 어깨를 으쓱할 것 같은 그림책이다. 48쪽,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