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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문화부장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작은 지역에서 소규모 음악회를 많이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관객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 음악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음악이 주는 감동을 순박하게 표현하는 관객이 좋아 작은 연주회를 자주 갖는다고 말했다. 관객에 대한 사랑이라면 배우 박정자를 빼놓을 수 없다. 열정과 카리스마의 이 배우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0순위는 관객이라고 말해왔다. 관객이 열광하고 환호할 때 모든 것을 잊고 황홀하다는 이 노배우의 마음은 팬들의 함성으로 뜨거운 라이브 콘서트장에 선 젊은 K-팝 그룹의 심장과 다르지 않다. 관객이 왜 희곡, 무대와 함께 ‘연극의 전통적 3대 요소’로 꼽히는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하지만 관객으로 가득 찬 원형극장에 오른 그리스 비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연의 오랜 전통이 깨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언택트(Untact·비대면) 문화’ 때문이다. 새로운 집단 감염에도 사태가 다소 안정세로 접어들면서 전시장 문이 열리고, 공연이 재개되고, 영화 신작 개봉이 시작됐지만 ‘우리는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전망은 문화 쪽에서도 현실이다. 직접 만나 교감하는 ‘라이브 현장성’은 문화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언택트 문화의 경험은 문화 전체에 새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코로나, 그 몇 달 사이 전통의 극장보다 혼자 관람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편리해졌고 한쪽에선 온라인 공연의 새로운 포맷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테크놀로지 시대 문화적 경험도 새로운 감각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룹 슈퍼엠의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 콘서트는 주목할 만하다. 온라인에서 실시간 중계된 콘서트는 라이브 경험 대신 뮤직비디오와 음악 방송을 넘나드는 카메라 워킹으로 온라인 관객을 공연장 한가운데로 데리고 들어가 공연자와 마주 보게 했다. 3만3000원 유료 공연으로 109개국, 7만5000여 명이 동시 관람해, 약 25억 원을 벌어들였다. 전 세계 팬덤을 갖고 있는 K-팝 가수에겐 실현 가능한 모델이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포맷이 코로나 사태 속에 나온 임시변통이 아니라 공연업계가 컬처테크놀로지(CT)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온 결과라는 점이다. 미래 콘텐츠 포맷이 코로나 사태로 시간을 앞당겨 등장한 것이다. ‘타임슬립’한 문화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시대, 문화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융복합 문화에 초점을 두는 문화 정책을 펴온 것을 고려하면 기반 기술 부문은 상대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히려 변화할 미래에 어떻게 예술가를 살리고 사람들이 격차 없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콘텐츠가 거대 외국 OTT의 단순 공급자로 전락하지는 않을지, 작은 민간공연단체들이 제작 인프라 면에서 열세에 놓이지 않을지 살펴야 한다. 예술가가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에게 수익이 가지는 않도록 저작권과 예술가에 대한 보상체계, 아티스트에 대한 올바른 수익 배분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빌보드와 아카데미를 휩쓴 한국 콘텐츠가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큰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