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製 기부와 ‘노동자 主流’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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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정치적 프레임으로 본질 덮어
극단적 불합리도 ‘합리’ 둔갑
反상식의 ‘奇行 국정’ 행태도

사회 중심 세력 ‘노동자’ 규정
일방적 가치 추구할 개연성 커
사악한 본색을 직시해야 할 때

정치적 프레임은 특정 사안의 본질을 덮거나 국민 인식을 오도(誤導)하기도 한다. 더러는 극단적인 불합리와 독선까지 합리적이고 당위(當爲)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이 명분인 문재인 정권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운동’도 그런 예로 보인다. 극빈층부터 부유층에 이르기까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국민 전원을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씩의 지원금도 불합리한 국정의 전형이지만, 지원금의 ‘관제(官製) 기부’ 캠페인은 반(反)상식을 넘어 해괴망측하다. 국민에게 걷은 세금으로, 받지 않아도 될 국민에게까지 지원금을 주면서 형편이 나은 사람은 준(準)세금처럼 다시 내라는 ‘기행(奇行) 국정’에 ‘재난 극복에 국민 참여’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웠다. 그 프레임에 따라, 기부 여부가 ‘성숙한 국민’과 ‘미성숙한 국민’을 가르는 억지 기준이 될 상황이다.

그런 프레임에 앞장선 장본인이 문 대통령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4월 6일 제안한 ‘고소득층의 재난지원금 자발적 기부’ 추진을 문 대통령이 확대 수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소득과 상관없이 오늘부터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께 드리는 위로와 응원”이라고 했다. 그러곤 덧붙였다. “(지원금으로) 자발적 기부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형편이 되는 만큼, 뜻이 있는 만큼 참여해주시기 바란다. 기부금은 고용 유지와 실직자 지원에 쓰일 것이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다. 많든 적든 어려운 이웃들과 연대하는 손길이 되고, 국난 극복의 힘이 될 것이다.” 지원금의 시장 사용으로 경기 활력을 되살리게 한다면서, 정부에 기부해야 어려운 이웃과 국난 극복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앞뒤부터 맞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재산을 일부라도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일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하지만 관제 기부, 그것도 정부가 주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정부에 기부하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문 대통령도 “기부는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다.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강조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관제 기부의 정치적 프레임을 미화(美化)할 순 없다. 문 대통령이 “기부에서 느끼는 보람과 자긍심이 보상”이라며 “기업의 임직원들과 종교인들을 포함해 사회 곳곳에서 기부의 뜻을 모아가고 있다.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주민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 속뜻을 내키지 않아도 좇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많게 마련이다. 정부·여당의 고위직뿐만이 아니다. 보수 야당 소속의 어느 국회의원도 “정부·여당이 국민의 선의로 모은 재원을 좋은 목적에 쓰겠다는 프레임을 짜, 마냥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했다.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인도 “재난지원금을 그대로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난을 받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문 대통령이 근로자의 날이던 지난 1일 ‘노동자가 대한민국 주류(主流)세력’ 프레임을 공식화한 것이 위험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SNS 메시지를 통해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이며, 주류로서 모든 삶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중심이 돼야 한다. 연대와 협력으로 우월한 힘에 맞서 삶의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명이다’고 했다. 노사정(勞使政) 대화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의 노동계 책임을 지적했다고 하지만, 사회와 국가 중심세력을 노동계로 규정한 것으로도 비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가 “주류세력 교체가 4·15 총선을 통해 가시화됐다고 보고, 이를 선언한 셈이다. 다음 단계는 개헌을 통해 사회의 기본 체질을 변화시키려 할 것”이라고 진단한 배경도 달리 없을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사회가 국정을 통해서도 추구될 개연성이 크다는 의미다. 지난 1월 1일 당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월 총선에서 승리해, 사회적 패권의 교체까지 완전히 이룩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마침표를 찍도록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번듯하고 교묘한 수사(修辭)에 가린 정치적 프레임의 사악(邪惡)한 본색을 국민 모두 직시해야 할 때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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