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불평하던 악기로 ‘천상의 연주’… 살아있는 ‘오보에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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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츠 홀리거

숨어있는 명곡 발굴 음반작업
지휘·작곡·음악 학자로 명성
“리스트 · 파가니니에 견줄 만”

소탈함이 몸에 배서일까. 처음엔 이상했지만 몇 해 지나 이내 익숙해진 유럽 거장들의 모습 중 하나는 값비싼 악기를 어깨에 메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억 단위를 훌쩍 넘는 악기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던 교수들의 모습에선 유럽인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달까.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Heinz Holliger·1939∼)의 첫인상도 그랬다. 강의 때마다 보따리장수처럼 짐 트렁크를 직접 끌고 학교에 나타나는 이가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오보이스트라니.

내가 다니던 독일 프라이부르크국립음대(Staatliche Musikhochschule Freiburg)의 교수 홀리거는 음악계에선 신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오보에의 신,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부른다. 홀리거는 1959년 20세의 어린 나이에 제네바국제콩쿠르 만장일치 우승에 이어 1960년대 수많은 국제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휘자, 작곡가, 교육자, 음악학자로도 활동하며 음악에 관한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있는 거장 중의 거장이다. “금세기 하인츠 홀리거의 위상은 과거 리스트와 파가니니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는 평론가들의 찬사는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필자의 학창시절, 학교에서 마주하는 홀리거 교수는 열정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이미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열정적인 레슨의 흔적인 젖은 셔츠 차림으로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받아 마시던 모습이 그의 일상이었다. 쉬는 시간에 한숨을 돌리며 벽에 기대 서 있으면 음대의 경비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에스프레소 한 잔을 건네곤 했다. 땀에 젖은 시대의 거장과 음대 경비아저씨는 마치 오랜 친구 같았다.

이미지 크게보기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교내에서 홀리거 교수에 대한 존경은 말도 못했다. 음악적인 평가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심에 한몫했다. 기악 전공자들은 늘 악기에 대한 갈증이 있게 마련인데, 제자들이 슬럼프를 겪으며 악기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홀리거는 그 자리에서 제자의 악기를 뺏어 천상의 소리를 연주해주곤 했다. 가난한 형편의 실력 있는 학생들이 콩쿠르나 오디션에 나갈 때면 악기를 빌려주거나 선물해주는 후원도 마다치 않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오보에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 중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모든 곡을 발굴해 음반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이런 곡들을 연주해 음악 역사에서 사장될 수도 있었던 곡들을 되살려냈고, 고전으로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오보에의 레퍼토리를 풍요롭게 확장시켰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 오늘의 추천곡 ]
오보에 협주곡 작품 9-2

토마소 알비노니는 바로크 후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1685∼1750)보다는 조금 앞선 시기에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다. 알비노니는 오보에라는 악기를 협주곡의 독주 악기의 지위로 끌어올린 최초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오보에 협주곡 Op.9의 2번은 알비노니 특유의 기품 가득한 선율이 무척 감미롭다. 오보에가 목관 악기임에도 하인츠 홀리거가 연주하는 오보에 소리는 어딘지 청량한 금관 악기의 느낌이 난다. 선율이 춤을 추듯 자유자재로 유영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홀리거의 연주를 들으면 알 수 있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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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불평하던 악기로 ‘천상의 연주’… 살아있는 ‘오보에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