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美·中 희토류 전쟁

中공급 의존땐 안보 위험 증가
코로나 사태 겪으며 인식 커져
美정부 “최대 490억원 지원”
업체들 광산 개발 뛰어들어

대부분 과거에 실패한 계획
상업적 생산까지 시간 걸려
中 가격 인하 나서면 치명적
2015년 몰리코프사 결국 파산

미국은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에 대한 중국의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희토류는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면서 전자제품과 군사장비에 반드시 들어가는 필수적인 소재다.

이를 중국이 독점하면서 미국과 무역 갈등의 ‘히든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늘 제기돼 왔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미·중 패권 경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미국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1980년 후반부터 잃어버린 희토류 패권 찾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조차 “미국의 희토류 개발 기업에 정부 지원 자금이 넘치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며 “향후 중국과의 희토류 가격 경쟁에서의 생존 여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미, 전방위 프로젝트 가동 =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희토류 공급망을 만들 기업을 위한 자금 지원에 나섰으며 에너지부도 석탄 폐기물에서 희토류 추출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했다.

또 미국 육군은 희토류 공급망 프로세스 관련 투자 펀드를 만들고 공군 연구소도 희토류 분리·처리 회사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외에도 미국 지질조사국은 ‘지구 자원 지도화 계획(Earth MRI)’을 통해 희토류 등 자원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국방·전자 산업 등에 필수 원자재인 희토류를 중국 공급망에 의존할 경우 국가 안보에 위험성이 커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미국 정부는 미·중 무역 갈등이 고조될 당시부터 희토류의 국내 생산과 처리 과정을 육성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미지 크게보기 세계 희토류 시장은 사실상 중국이 독점화하고 있지만, 미국은 최근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체 생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일본과 갈등하던 2010년 10월, 중국 장쑤성 롄윈강에서 희토류가 함유된 모래가 수출용 선박에 선적되는 장면. 자료사진

미 국방부는 이미 희토류 광산과 생산시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으로 국방생산법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방생산법은 지난 1950년 6·25전쟁 당시 군사 물자 조달을 위해 만들어진 법안으로 미국 정부가 임의로 필수적인 물품의 생산을 기업체에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해 미군에 필수적인 장비를 생산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미국 업체들이 희토류를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법에 근거해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코로나19 방역 관련 의료물품 생산을 명령한 바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기업들도 잰걸음이다. 미국 내 현재 유일한 희토류 광산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패스를 운용하는 MP머티리얼스는 미국 내 처리공장을 만들 계획으로 국방부 자금 지원을 받았다. 지원 자금은 500만(약 61억3650만 원)∼2000만 달러(245억52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인 라이너스와 합작한 블루라인은 미국 텍사스에 처리공장 설립도 지원할 방침이다. 그 외 많은 회사가 희토류의 정부 지원금을 노리고 뛰어들고 있다. 니오코퍼레이션개발은 희토류 처리 공정 지원금을 받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며, 텍사스미네랄리소스는 텍사스주 서부에서 희토류 광산 개발에 나섰다. 국방부 관계자는 “마운틴 패스 프로젝트는 앞으로 4000만 달러(491억4000만 원)까지도 자금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희토류 독점 지위 흔들리나 = 전문가들은 미국이 35년 전 희토류 시장을 장악했던 패권을 되찾기 위한 시도가 너무 늦었다는 평가를 했다. 또 전문가들은 중국이 사실상 독점한 희토류 시장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이 작다고 지적했다.

현대의 희토류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맨해튼 프로젝트’의 원자 폭탄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중국은 최근 30년 동안 관련 분야 독점을 구축해 왔다. 중국의 매장량은 4400만t 희토류 산화물(REO·금속의 품위를 뜻하는 단위개념)로, 세계 총 매장량의 37%를 차지한다. 중국희토류협회는 중국의 미확인 매장 및 부존량이 최대 1억t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광산은 세계 최대 희토류 광물 공급처로 중국 총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중국의 희토류 독점화와 무기화에 대한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반발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차지하는 세계 희토류 생산량은 2009년 97%에서 지난 2018년에는 70.6%까지 낮아졌다. 미국의 생산량은 호주의 11.8%에 이어 8.8%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미국 내 희토류 광산은 마운틴 패스가 현재 유일하고, 투자자들은 다른 기업들의 희토류 광산 개발 프로젝트 투자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대부분의 희토류 프로젝트는 과거에 실패했던 프로젝트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희토류 광산을 찾고 처리공장을 세운다고 해도 거의 독과점 수준인 중국이 가격 인하에 나서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기업이 희토류 산업에서 실패해 파산할 경우 중국에 유리한 국면이 재현될 것”이라며 “2015년에 몰리코프(Molycorp)사가 희토류 생산량을 늘렸지만 결국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파산했다”고 말했다. 현재 희토류 개발과 생산에 나선 어느 회사도 중국의 정부 보조금과 직접 경쟁할 수 없다.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독점은 그대로 유지되며 글로벌 사슬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희토류 시장을 좌우하기 때문에 공급처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은 예전부터 계속됐다”면서도 “희토류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철 기자 mindo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