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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나 표기는 같되 뜻이 다른 동음이의어는 가끔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다. 한글 전용론자들을 비판할 때 흔히 등장하는 ‘정부’가 그렇다. ‘나의 사랑하는 정부’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정부’를 ‘政府’로 파악해 애국자로 받아들일 것이고, 누군가는 ‘情婦’나 ‘情夫’로 파악해 불륜을 저지른 사람으로 파악할 것이다. 이는 한자를 쓰면 해결될 문제이나 고유어 동음이의어는 그마저도 어려워 난감하다.

한없이 고조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의 제목에서 ‘흥분의 도가니탕’이란 표현을 보게 되었을 때 그렇다. 어쩌다 도가니와 도가니탕이 혼동된 것일까? ‘도가니’는 쇠붙이를 녹일 때 쓰는 그릇이기도 하고, 동물의 무릎 연골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쇠붙이를 녹이려면 뜨거운 열이 필요하니 열기가 고조됐을 때 ‘흥분의 도가니’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소의 무릎 연골로 펄펄 끓는 탕을 끓일 수 있지만, 그것을 보고 흥분의 도가니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음식에 따라 차게 먹어야 할 것이 있고 뜨겁게 먹어야 할 것이 있다. 뜨거운 국물을 훌훌 들이켜면서도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우리에게 국물 음식은 당연히 뜨거워야 한다. 그래서인지 도가니탕은 펄펄 끓는 상태에서 식탁에 오를 때가 많다. 지옥의 열탕처럼 끓어오르는 탕을 보면서 너무 흥분한 탓인지 ‘흥분의 도가니탕’이라고 표현하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말의 변화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주도하거나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세월이 흐른 뒤 흥분의 도가니탕이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쇠붙이를 녹이는 도가니를 모르는 이들, 도가니탕의 도가니가 동물의 무릎 연골인지 모르는 이들이 늘어가는 상황이니 더더욱 그렇다. 깐깐한 국어 선생들은 혀를 끌끌 찰 만한 일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 그렇다면 펄펄 끓는 분노나 안타까움은 삭이고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