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직 논설위원

# 코로나19 사태로 다급해진 정부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원격의료 한시적 허용 카드를 꺼낸 게 지난 2월 21일이었다. 그러나 원격의료에 필요한 인프라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리라고 하니 ‘졸속 조치’라는 의료계 반발만 불렀다. 이후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병원에 입원도 못 한 채 자택에서 대기하던 중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대구시의사회가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의 ‘원격의료 보이콧’ 지침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라며 원격의료 동참을 선언했던 것. 그러나 환자의 경증·중증 여부를 알기 위해 필수적인 맥박·혈압·호흡수 등 생체 정보 없이 전화 통화만으로 환자 상태를 가늠하는 데는 원천적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스마트워치나 휴이노의 ‘메모워치’ 등 웨어러블 시계 등에서 금지해왔던 맥박·혈압 등 건강상태의 실시간 병원 전송 기능을 허가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 2011년 사상 초유의 농협 전산망 해킹사고가 터지고 막대한 고객 피해가 발생하자 금융 당국은 2013년 모든 금융회사로 하여금 내부 업무망과 외부인터넷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망(網) 분리’를 의무화했다. 이후 해킹 방지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망 분리 규제로 인해 외부시스템과 연계가 필수적인 클라우드 기술과 핀테크 활성화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당국은 꿈쩍도 안 했다. 그러던 금융위원회가 최근 금융시스템 망 분리 규제의 한시적 허용 지침을 내놨다. 코로나 사태로 금융사 IT 관리자가 자가격리나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는데, 금융사 외부에서 내부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다는 기존 규제를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에 적시한 두 사례는 ‘한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시적이나마 맛본 규제 철폐의 효용성이 ‘상시적 허용’으로 가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획일적인 원격의료 금지와 망 분리의 폐해를 우리 사회가 절감한다면 코로나가 불러온 뜻밖의 긍정(?) 효과다. 코로나 팬데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책 전환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과거 관행과의 단호한 결별이다. 또 이념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