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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국산 셰일오일 겨냥
산유국 ‘추가 감산’ 반대하자
사우디“1일 1300만 배럴 생산”
주도권 놓고 ‘파워게임’ 본격화

중동 대표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세계 에너지시장 주도권 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증산을 선언하고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감소로 국제유가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미국, 사우디, 러시아 등 3대 산유국 간 치킨게임이 본격화했다. 당분간 ‘저유가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이날 리야드 주식시장(타다울)에 낸 공시에서 원유생산능력을 하루 1300만 배럴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아람코는 “원유생산능력을 현재 하루 1200만 배럴에서 100만 배럴 더 올려 1300만 배럴까지 상향하라는 에너지부 지시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시장은 세계 2위 산유국 사우디가 전략비축유까지 동원해 일시적 증산에 나설 것으로 예측했지만 아예 생산능력을 확대해 장기전에 나선 셈이다. 사우디의 맹방이자 7위 산유국인 UAE 역시 증산전쟁에 가세했다. UAE의 국영 석유회사 ADNOC는 이날 오는 4월부터 산유량을 현재 하루 300만 배럴에서 400만 배럴로 33%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500만 배럴까지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계획을 서두르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공격적 원유 증산은 당초 3월 초 OPEC과 주요 산유국 간 협의에서 추가감산을 거부한 세계 3위 산유국 러시아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사우디의 증산 발표 후 “러시아는 단기적으로 하루 20만∼30만 배럴을 증산할 수 있고 길게는 하루 50만 배럴 증산도 가능하다”고 맞불을 놨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 후 증산 발표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미국을 포함해 1∼3위 산유국 간 패권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1949년 이후 70년간 원유수입국이었지만 셰일오일 개발 본격화로 2018년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고 지난해 석유 순수출국이 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급부상하는 미국산 셰일오일을 겨냥해 추가감산에 반대하자 사우디가 원유시장의 독점 지위 회복을 노리고 증산 폭탄을 던졌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유가 하락 시 생산단가가 높은 셰일오일 기업들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미국 역시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 없는 형국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빈 살만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원유시장 주도권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숙명의 대결로 끌어들였다”며 “증산경쟁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3대 산유국 간 물고 물리는 치킨게임이 본격화하면서 코로나19발 수요 감소와 맞물려 저유가 흐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날 ‘코로나19 에너지 분야 영향’ 보고서를 통해 항공을 비롯한 경제활동 감소, 생산활동 제한 등으로 경기회복 이후에도 원유가격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