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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정치부 차장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른바 ‘비례정당’ 카드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초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공식 출범하기 전에만 해도 민주당 내에선 경계보다는 냉소적인 기류가 더 강했다. 설마 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고 한들 보수 표가 그쪽으로 간다는 보장이 있을까, ‘정당정치 희화화’라는 여론의 뭇매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예측은 빗나갔다. 미래한국당은 만들어졌고, 출범 한 달도 안 돼 비례대표 정당 투표 시 민주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여권에 대한 광범위한 민심 이반이 이번 총선에서 ‘응징 투표’로 표출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러자 민주당도 다급해진 눈치다. 직접 비례정당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는 “명분이 없다”며 거리를 둬 온 민주당이 함세웅 신부,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등 정치권 밖 친여 인사들이 가칭 ‘미래한국당 저지와 정치개혁 완수를 위한 정치개혁연합’ 창당을 제안하며 선거연대론을 내걸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공론화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그의 주변에선 이미 공개적으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면 외부 정당과 선거연대를 하는 것은 괜찮다는 논리다. 급기야 여당 내 대표 전략가로 꼽히는 최재성 의원은 2일 ‘비례대표 무(無)공천’을 주장했다. 선거연대를 위해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포기하자는 얘기다.

민주당과 친여 인사들은 비례정당 카드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정치개혁과 적폐청산 프레임을 다시 한 번 꺼내 들고 있다. 적폐세력이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려 한다는 위기론도 설파하고 있다. 이 와중에 나온 비례대표 무공천 주장은 ‘대의(정치개혁·적폐청산)를 위한 민주당의 거대 기득권(비례대표 의석) 포기’로 포장된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첫째, 비례정당 카드는 민주당에는 자기부정이다. 미래한국당에 대해 “위법한 꼼수 정당”이라고 맹비난하고 황교안 통합당 대표를 고발한 민주당이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말 민주당과 함께 공직선거법을 강행 처리한 정의당과 민생당에서도 “미래한국당이라는 꼼수를 막기 위한 꼼수” “듣기 좋은 말장난” 등의 비판이 나올까. 둘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민주당 지지자에게 다른 당을 찍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심 왜곡 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단번에 상황을 반전시킬 묘책이 아니라,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와해됐던 보수 세력을 2년 반 만에 부활시킨 1등 공신은 황교안 대표도, 미래통합당도 아닌 문재인 정부의 오만하고 무능력한 국정 운영이다. 미래한국당이라는 기형적 정당이 출현한 배경에도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한 민주당의 독선과 꼼수가 있었다. 오만과 독선이라는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어떠한 처방도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