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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오랜만에 만난 제자가 선물해준
부직포 2장 그렇게 소중할수가

바이러스 얼마나 확산될지…
방어벽 무너졌고 불안은 넘실

남 탓하고 공격하는 일 자제를
지금 성숙한 시민의식 필요한 때

여독이 풀리지 않아 망설이다가 만난 제자에게서 마스크 두 장을 선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지 않았다면 부직포 마스크 두 장을 선물하는 건 웃자는 일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원하던 일을 하게 된 제자는 기쁨을 나누고자, 나는 축하하고자 기꺼이 만난 자리에서의 웃지 못할 장면이다. 마스크로 한몫 챙기겠다고 별의별 행태가 다 벌어지고 있으니 입 하나 막자는 이게 이제는 단순한 소품 이상이다.

귀국하면서 걱정이 컸다. 뉴스에 오르내리지도 않는 곳에 머물렀건만, 약국의 마스크가 동이 나서 어렵사리 구한 일반용을 쓰고 돌아왔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10시간 이상을 견뎌야 했는데,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한 애초의 결심은 몇 시간 버티지 못했고, 끼니마다 꼬박꼬박 먹는 것은 물론, 수시로 물도 마셨다. 졸다 보면 마스크가 훌렁 벗어져 있기도 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바이러스 차단하는 데 살아 움직이는 매개체는 허점투성이가 아닌가.

우리 땅을 밟기만 해도 불안이 해소될 줄 알았다. 유럽에서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당한 아시안에 대한 기사를 보았고, 한국인 탑승객의 화장실 사용을 금지한 어느 항공사의 처사, 마스크 안 쓰고 돌아다녔다고 집단 폭행을 당하거나, 반려자와 산책하다 맞아 죽은 강아지에 관한 기사도 읽은 바 있다. 두려움이 건드린 폭력성이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는 이즈음이다. 사람은 이토록 쉽게 비이성적일 수 있고 위선과 잔인성에 취약한 존재라서,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다. 두려움을 타고 번지며 사회 전반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고립시키는 이것의 정체를 과연 언제쯤 알게 될까.

여기저기서 경고성 문자 메시지가 날아든다. 경고를 무시하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듯한 분위기…. 개학, 개강이 늦춰지고 이런저런 모임들이 연기됐다. 사람들은 가까이 만나기를 꺼리고 마트에도 안 가고 택배 기사도 의심한다. 자영업 하는 지인은 임차료 걱정, 동생은 대중에 노출되는 일이라도 그만둘 수 없으며, 백화점 강연이 주 수입원이던 모 작가는 하소연도 마음대로 못 한다. 세상이 정지되고 있다.

그런데도 온갖 명목으로 통장 잔고를 갉아먹고 있는 사회적 약속들은 날짜를 어기는 법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쓰기에 집중하는 것. 누가 선뜻 가져갈지 알 수 없는 원고라도 이제껏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었으므로.

일자리를 찾느라 한동안 애면글면하던 지인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아무나 못 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아이 둘을 번듯하게 키우며 일을 놓지 않았건만, 최근에 식당 설거지 자리를 고민했다고 해서였다. 그는 작은 신문사에서 시급이 깎인 채 수습 단계를 거치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가진 모임 사진을 잔뜩 보내 왔다.

그는 어려운 처지의 청년들 독서 모임을 오랫동안 이끌고 있는데,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도 꾸준히 소신을 지켜내는 그의 동력이 나는 늘 신기하고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지탱하고 있나.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인 젊은이들과 웃고 있는 그가 새삼스레 놀랍기만 하다. 세상이 정지된 듯했는데도 그들의 세상은 여전히 돌고 있었다. 누구는 간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누구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누구는 의자 몇 개가 전부일망정 음식점을 열었단다. 어떤 젊은이가 쓴 기사를 링크해 주었고, 어떤 저자의 북토크에 다녀왔다면서 최근에 읽은 책의 구절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3·1운동을 공부하면서 많은 존엄한 인생을 목격했다. (…) 이들 외에도 상처투성이인 채 시종 자신과 민족에 성실했던 생애를 만나고 또 만났다. 그 경험이 내 자아의 작은 뿌리가 되면 좋겠다….’

책을 몇 차례 읽다 보니 ‘지금의 행복이 보이더라’는 그의 표현이 목구멍에 걸리는 듯했다. 소신껏 행동하는 그들과 더불어 이 시점에 내게 온 구절을 보자니 정신이 맑아진다. 오래된 일에 관한 구절이건만 지금 현실과 다를 것도 없고 우리에게 필요한 핵심도 이보다 정확할 수 없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렸다고 압박당하고도 환자 곁을 지키다 숨진 이웃 나라 의사에 대해 알고 있다. 소임을 다하고자 머리 깎고 진료소에 들어간 간호사도 있다. 드러나지 않은 우리의 방역 담당자들 고충은 또 얼마나 클까. 조기 진압이 어려웠던 원인에 무지와 정치적 논리가 있었다. 결국 바이러스 방어벽이 무너졌고, 얼마나 더 확산될지 알 수도 없다.

불안해도 남을 탓하고 공격하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지금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 어차피 벌어진 일은 수습이 최선이고, 의료 수준을 믿어야 할 때다. 개인위생에 철저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 어느 경우보다 중요해졌다. 더불어 자기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한다. 나라에서는 의료 체계에 힘을 실어주고 시민은 매뉴얼에 따르며,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여독이 남은 채 밭일에 매달린 남편에게 잔소리했더니, 농사는 때가 있어서 일부터 마치겠노라 고집을 부린다. 지금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손봐야 하는 때다. 자연의 시계는 놀라울 만큼 정직하고 게으른 농부는 얻을 게 없다. 그래서 내 몫의 일을 하며 지켜보기로 한다. 때아닌 추위가 있었지만, 잘린 가지의 맨살도 영하 10도 정도에는 냉해를 입지 않는다니…. 상처를 겪은 가지는 더 건강한 꽃과 실한 열매를 키워낸다. 파장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도 잘린 나뭇가지와 같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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