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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최근 코로나19로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부품을 조달받지 못해 생산을 중단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부품 공급이 안정적이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로, 위험관리에서 실패한 사례다. 문제는, 국내의 불합리한 규제와 제도가 대기업의 부품 공급망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내모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수출 규제, 코로나19와 같이 예기치 못한 외생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경제가 감내해야 할 리스크도 그에 비례해 커진다.

국회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이 제출돼 논의되고 있다. 만약 이 상생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술 유용 분쟁을 회피하기 위해 국내 기업은 해외의 수탁 기업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어, 국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거래 기회를 잃어 버리게 된다. 개정안에서는 통상적 기업활동에서 대기업이 기술을 유용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의 전환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유용은 지식재산권법 및 공정거래법 등의 법으로 규율해야 할 문제다. 상생을 빌미로 정부가 자의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국내 중소기업의 생태계가 허물어진다.

입증 책임 전환은 제조물 책임법과 같은 사적 피해 구제 등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정부가 벌칙을 부과하면서 무죄임을 입증하도록 전환하는 것은 부당하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진영논리로 지지를 강화하는 정치가 아무리 유리해도 인류 보편적 법 체제를 희롱하고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위반해선 안 된다.

상생법은 대기업과 중기(中企)들의 자율적 상생협력을 촉진하자는 정신을 가지고 발의됐다. 정부가 사적 영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 정신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상생의 기업활동을 촉진하자는 뜻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상생법의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부 개입의 여지와 함께 처벌 조항까지 만들어 상생법을 위헌적 법률로 만들고 있다. 기술 유용 행위는 이미 다른 법에서 규율되고 있는데도 상생법 개정을 통해 중복 규제해, 기업이야 어떻게 되든 중소벤처기업부가 확실한 먹거리를 챙기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기술 유용 행위의 대상 행위, 위법성 판단 기준 등을 법률에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예규에 위임해 정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위탁 기업이 유사한 물품을 제조·위탁한 사실만 보여도 입증 책임을 전환한다는 개정안의 내용이다. 유사한 제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제3자에게 제조 위탁한 것만으로는 기술 유용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 기업 전략에서 유사 상품을 여러 기업에 위탁해 제조하는 것은 당연한 경영 기법이다. 위탁·수탁 기업이 특수 관계이거나 장기적 신뢰가 쌓여 있는 경우에는 한 기업에 전적으로 위탁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아니고 단순 계약 관계라고 한다면 위탁 기업의 경영은 수탁 기업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수탁 기업이 가격을 올리거나 생산 물량을 제한하는 등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막기 위해 위탁 기업은 여러 수탁 기업에 똑같은 상품을 생산하게 한다.

이처럼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글로벌 개방경제에서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법률은 국제표준 규율과 정합적이어야 한다. 국제표준 규율에서 일탈한 법률들은 기업을 국내에서 몰아내거나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 기회 및 생태계를 파괴한다. 부당한 법률은 중소기업도 보호하지 못하고 국가경제를 허물어뜨리는 신종 악성 바이러스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