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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신간‘대등한 화합’
“공동문명임을 재확인해야”

한·일 관계가 경색 국면을 풀지 못하는 가운데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81) 서울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철학의 유산을 통해 그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이미 2010년에 ‘동아시아문명론’(2010, 지식산업사)을 펴내 일본, 중국, 베트남에서 번역될 만큼 관심을 모았던 조 교수는 그 관점을 더욱 심화시킨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을 이번 주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조 교수는 ‘동아시아문명론’에서 상극(相克)이 상생(相生)이고 상생이 상극이라는 생극론(生克論)을 바탕으로 한·중·일뿐 아니라 베트남을 포함하는 학문과 문화의 공동체를 제안했었다. 한때 인류사에서 가장 앞섰었고 여전히 유효한 동아시아 문·사·철(文·史·哲)의 공통자산을 바탕으로 갈등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명적 제안이다.

조 교수는 이번 책 ‘대등한 화합’에 대해 “동아시아는 정치 싸움이나 교역 경쟁의 무대 이상의 의의를 가진 공동의 문명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함께 추구해온 소중한 이상을 망각하지 않고 이어받아 심각한 상태에 이른 불화를 해결하는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그 핵심인 ‘대등한 화합’이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최대의 의의를 가지는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자산임을 논한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동아시아문명권의 옛글과 구비철학에 흩어져 있던 ‘대등론’의 유산을 화합의 새 담론으로 펼친다. 먼저 조 교수는 차등론, 평등론, 대등론의 정의와 관계를 논한다. 유럽문명권이 주도한 평등론은 약육강식의 차등론을 부정하는 전환을 이룩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이상론으로 결론이 났다.

“차등론은 어느 문명권에나 있다. 비판이 거듭돼도 강자에게 계속 필요하므로 없어지지 않는다. 평등론을 내세워 차등론을 부정하는 대전환을 유럽문명권이 선도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대등론은 동아시아문명 심층의 유산이다. 생극론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특별히 거론하는 것이 대등론이다.”

조 교수는 이규보, 최한기 등의 글과 유성룡의 형 이야기 등 구비문학을 들어 유식(有識)이 무식(無識), 무식이 유식이며, 미천이 존귀, 존귀가 미천인 대등론을 설파한다. 대등론의 기초를 이루는 생극론은 일본 에도(江戶)시대 중기 철학가인 안도 쇼에키(安藤昌益)에게서 나타나는 것에서 보듯, 동아시아문명의 철학적 공유재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과 화합하기 위해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며 그 본보기로 한·일 미술문화론도 전개한다.

조 교수는 “동아시아의 대등한 화합, 이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실현이 가능하게 하는 힘을 찾으려고, 문명의 심층을 철저하게 탐구하려 했다”며 “국가나 민족의 구분을 넘어서서 공유해야 할 유산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상극이 상생이게 하는 근거로 삼는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특히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넓은 시야에서 접근하면 거대한 전환이 시작된다”고 당부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