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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사회부 차장

정부의 강력한 사재기 단속에도 천정부지로 뛴 마스크 가격은 전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사태 전만 해도 한 장에 1000원 미만 하던 ‘보건용 마스크’ 가격은 현재 3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오를 줄만 알고 내려올 줄은 모르는 부동산 가격을 보는 듯하다. 품귀 현상에 편승해 무려 400만 장 이상의 마스크를 사재기한 업체가 식품의약품안전처 단속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국내 하루 최대 생산량의 약 4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중국산 마스크를 장당 3740원에 수입한 뒤 신종 코로나 예방용 마스크로 속여 9300원에 내다 팔아 폭리를 취한 사례도 적발됐다.

이 같은 소동의 배후는 뭘까.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유통상인의 이기적인 욕망 탓만일까. 혹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방역 불감증과 불신 문화’ 탓은 아닌가.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처럼 호흡기 증상을 가볍게 생각하는 선진국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 선진국만 봐도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은 외출을 자제한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지침을 바탕으로 감염 또는 그럴 우려가 있는 시민에 한해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을 다녀간 한 독일인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이 모두 감염병에 걸린 줄 알았다. 독일에선 감염자 등 꼭 써야 할 사람만이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상당수가 여전히 감기 증상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거리를 활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진단이다. 일선 초등학교 교사가 독감 판정을 받고도 교장의 지시로 출근해 논란을 빚은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서로를 의심하면서 일단 마스크를 쓰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보건 당국은 마스크 소동이 벌어지자 뒤늦게 지난 12일에야 WHO 지침을 바탕으로 마스크 착용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 하지만 귀담아듣는 시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누가 감염자인 줄 모르는데,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감염 의심자를 돌보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하거나, 감염·전파 위험이 큰 직업군에 종사하는 경우’에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때늦은 권고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불신 리스크’를 키운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지난 13일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흘도 지나지 않아 감염 경로조차 확인되지 않는 신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이제는 지역사회 유행을 의심해야 할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만연한 불신은 마스크 소동과 같은 불필요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불러온다. ‘트러스트’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바로 신뢰로 대변되는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해당 저서에서 한국을 중국·이탈리아·프랑스 등과 함께 ‘저(低) 신뢰 국가’로 분류한 바 있다. 사회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믿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신뢰가 부족하다는 뜻에서다. 그의 주장에 다 동의할 수는 없다. 분명한 점은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가 한국이 신뢰 국가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또 다른 잣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