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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 숙명여대 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한국영화사 101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수상으로 4관왕이 됐다는 소식은 무엇을 기대하든 기대 이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율이 느껴지는 성과다.

지난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황금종려상의 경우 작품성과 독창성, 사회적 함의를 기준으로 수상작을 선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 수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기생충’은 국내 1000만 관객 동원과 북미 개봉 한국영화 흥행 1위가 증명하듯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격으로, 그동안의 황금종려상 수상작과는 애초에 길이 달랐다.

특히, 아카데미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전 외국어영화상),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기록은 세계 영화사상 최초다. 비영어권의 영화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경우는 전무하다. 그러면 최근 20년 동안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기록을 통해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코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한국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화면으로 유럽 영화계를 매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빈집’은 장자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적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이 어필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피에타’의 경우 서구 문명의 기반이 되는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극적인 독특함을 구현한 점을 들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은 작품 속에 깔려 있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나 엘렉트라콤플렉스 등의 헬레니즘적 요소로 유럽 영화인들의 가슴속 깊이 안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국영화의 국제영화제 수상은 한국적 매력과 서양의 기본 문화를 잘 접합한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봉준호 감독이 그동안 ‘설국열차’와 ‘옥자’에서 추구해 왔던 글로벌 시각의 접근은 칸영화제뿐만 아니라 아카데미를 사로잡을 만한 요소가 됐을 것이다. ‘설국열차’에서 자본에 의한 사회계급화와 그 극복 과정이라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외 올 로케이션에다 송강호 등 한국인 배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해외 배우와 함께 만들었고, 언어도 대부분 영어를 사용한 것은 세계 영화계에 인정받을 만한 밑작업을 해 온 것이다. ‘옥자’ 역시 많은 부분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작업했으며,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인 환경문제와 유전자조작식품(GMO) 문제를 다룬 점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에 충분한 요소가 됐을 것이다. 한마디로, 아카데미상에서 주요 부문 4관왕이라는 역사적인 위업은 ‘기생충’ 한 편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기생충’이 지닌 자본의 양극화로 인한 계층 갈등 문제를 다룬 주제적인 측면,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이름값에 걸맞은 디테일이나 공간 구성 및 각본상을 받을 만한 구성과 대사, 캐릭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기생충’의 영화사적 쾌거에서 보듯이 이제 한국영화계가 한국적인 소재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 시각으로 풀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또한, 5000만 인구 중 한 해에 2억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영화시장에 대한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공적·사적 투자도 더 많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