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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쓴 탈원전 비용이 513조 원에 이른다는 논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격주로 발행돼 인터넷으로 공개되는 ‘세계원전시장 인사이트’라는 정보지의 해당 호를 은폐한 것이 뜨거운 현안이다. 탈원전을 해도 전기료 인상은 맥주 한 잔 수준이라고 해온 탈원전 단체의 주장과 이를 앵무새처럼 따르는 정부로선 두려웠을 것이다.

필자도 지난해 12월 24일 자 문화일보 ‘포럼’ 기고문에서 탈원전 비용이 1000조 원이 넘는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의 513조 원은 운영허가 기간을 마친 원전들을 20년 더 운전하지 못하게 한 비용과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함으로써 발생한 비용을 추산한 것이고, 필자의 1000조 원은 게다가 원전 수출을 하지 못한 국가 손실을 보탠 게 다를 뿐이다.

정부는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하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앞으로 전기료가 얼마나 오를지 수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게 그리 어려운 계산인가? 연이은 한국전력의 적자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원가를 공개해서라도 전기요금을 올리려는 한전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지난 40년간 정부가 육성해온 원전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는 것은 얼마일까? 원전 2기를 건설한다고 했을 때 두산중공업의 협력사는 460여 개가 된다. 보조기기 업체는 약 1300개 업체나 된다. 이 업체들이 없어지는 경제 효과는 또 얼마나 될까?

지금은 우리나라 원전이 경쟁국 원전의 절반 가격이므로 수출이 가능하지만, 수년 후 우리 원전산업 생태계가 붕괴된 다음엔 원전 수출은 불가능하게 된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상품 하나를 개발하는 것이 국운을 결정하는 일이라면 탈원전 정책은 그것을 발로 차버린 정책이다. 또, 원자력과 우주 기술은 국격(國格) 기술이라고 한다. 경제적 이득이 없다 하더라도 그 기술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국가의 위상을 나타내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잃은 효과는 또 어떻게 될까?

그런데 감추고 덮는다고 숨겨질 일인가? 어림 계산만 해 봐도 알 수 있다. 최초 운영허가 기간이 지난 원전에 대해 계속운전을 금지함에 따라 2023년부터 고리 2∼4, 신고리 1∼4, 월성 2∼4, 한빛 1∼6, 한울 1∼6, 신한울 원전 1∼2호기를 합쳐 총 24기의 계속운전이 금지된다. 용량은 총 2만4150메가와트다. 여기에 20년, 365일, 24시간, 이용률 85%를 고려하고 킬로와트시당 120원의 전기료를 곱하면 약 400조 원이 쉽게 계산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백지화하지 않았다면 2기가 2800메가와트의 전력을 60년간 생산했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셈하면 전력량은 150조 원이 된다. 이 중 건설에 든 비용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빼면 100조 원의 국가 손실이 발생한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원전산업을 접은 창원의 부품업체와 두산중공업 협력사들이 말해준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말해준다. 창원의 침체된 경기가 말해준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전력기술의 하락세인 주가가 말해준다. 한국전력의 국제신용등급 하락이 말해준다. 의무할당 제도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가장 많이 구매했던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부터 재생에너지 구매 2위 기업으로 내려앉은 사실이 말해준다. 탈원전과 탈석탄이 되면 더는 재생에너지를 구매해줄 회사가 없어진다는 현실이 말해준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김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또 대한민국이 제대로 서길 바란다면, 이제는 제대로 논의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