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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원시세포도 없던 시절
바이러스 조상 등장했다는 說
미생물 퇴화 결과라는 說까지
잘못된 정보와 맹신이 더 위험

‘라떼 이즈 홀스’ 얘기를 하자면, 예전 학교 졸업식 때에는 ‘우등상’ 이외에도 ‘개근상’이라는 것을 시상했다. 근면함의 상징인 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는지 모르겠다.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정신력으로 학교에 가서 양호실에라도 누워 있어야 한다는 무지함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그 질병에 노출됐겠는가?

19세기 러시아 생물학자 이바놉스키(Ivanovsky)는 질병의 원인으로 꼽히던 세균을 걸러내는 필터를 통과한 액체가 여전히 ‘담배 모자이크병’이라고 불리는 식물 질병을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베이제린크(Beijerinck)라는 네덜란드 과학자가 이 연구를 지속하다가, 세균보다 훨씬 작은 감염체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를 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라틴어 어원이 그러했듯이 바이러스는 출발부터 질병과 밀접한 생명체였다. 바이러스에 대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생물학자들은 근본적인 질문 하나에 답하고 있지 못하다. 도대체 바이러스의 근원은 무엇인가? 동물이나 식물은 화석이라는 눈에 보이는 증거들이 있고, 세균과 같은 경우에도 유전자가 복잡하고 양이 많아서 이를 분석함으로 서로 다른 세균들이 언제 같은 조상에게서 갈라져 나왔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종류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바이러스의 근원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가설은 크게 세 가지이다. 지구상에 원시세포가 등장하기도 전에 바이러스 조상인 유전물질이 등장했다는 설, 오래전 미생물의 세포가 거꾸로 퇴화하면서 최소의 유전자만 남아서 이렇게 됐다는 설, 다른 생물들이 다 생겨난 후 이들에게서 각각 분리돼서 만들어졌다는 설 등이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와 다른 생물 세포들의 유전자와 단백질의 비교 분석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지만 쉽지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냉면 가게가 서로가 원조라고 우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 집에서는 물냉면만, 다른 집은 물냉면과 비빔냉면 모두를 만들어 판다면 누가 더 원조일 가능성이 높을까?

답은 ‘둘 다 가능하다’이다. 원조집에서 물냉면만 만들어 팔았는데, 후발주자가 비빔냉면을 개발해서 덧붙였을 수도 있고, 거꾸로 원조 냉면집에서는 두 가지 메뉴가 모두 있었는데 후발 주자는 한 가지만 팔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위의 1번과 3번 가설이 짬뽕 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바이러스는 DNA와 RNA와 같은 유전물질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로 구성돼 있다. 냉면 얘기를 다시 하자면 면과 육수의 원조가 다르다고나 할까? 아주 오래전 원시세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DNA나 RNA 덩어리들이 스스로 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가 원시세포가 등장하자 이들에게 감염됐고, 침입한 집주인의 단백질을 가져다가 자신의 껍질로 이용하게 된 것이라는 가설이다. 당장의 병 치료와는 관련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과학적 지식의 축적이 결국에는 질병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광범위한 세균을 처리하는 항생제와 달리, 다수의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항바이러스 약제는 아직 개발되지 못했다. 약한 바이러스를 미리 주사해서 우리 몸의 면역을 키워주는 백신이라고 부르는 예방책이 어찌 보면 최선의 방책이다.

그런데 치료 방법의 부재보다도 잘못된 정보와 맹신이 더 큰 화를 부르곤 한다. 1998년 영국에서는 웨이크필드(Wakefield)라는 학자가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 ‘란셋(Lancet)’에 아기에게 접종하는 MMR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물론 추후에 이 내용이 과학적으로 잘못됐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윤리규정을 위반한 엉터리 논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이미 수많은 부모가 백신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아기들이 어이없는 희생을 당하게 됐다. 지금 바이러스만큼이나 창궐하고 있는 잘못된 정보와 거짓 뉴스들에 대해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