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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경희대 교수·정치학 시장경제와민주주의硏 이사장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A 달 미국 예일대 교수는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는 시민들의 선호에 부응하는 정부’가 민주주의라고 정의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제도적 장치가 요구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평등하고 공정한 선거다. 시민들이 평등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경쟁자를 매수하려 들거나 상대 후보에 대한 음해성 수사를 벌이거나 아니면 특별한 공약을 뒷받침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의 꽃’은 처참하게 짓밟히고 국민의 주권은 사실상 박탈된다. 이 때문에 어느 민주국가나 이런 불공정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2018년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사건이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진행돼 왔다.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의 하명 수사, 청와대의 송철호 후보 선거공약 지원, 더불어민주당 내 송 후보 경쟁 상대에 대한 ‘후보자 매수’ 혐의 등이다.

검찰의 수사가 청와대로까지 향하자 청와대와 법무부는 갖은 방법으로 수사를 막고 나섰다. 두 차례 ‘인사 학살’로 수사팀 해체의 위기를 맞은 ‘윤석열 검찰’은 지난 29일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출신 5명과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을 선거 개입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정무수석실·정책실이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소 과정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끝까지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고 버텼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1차 대학살 인사’로 새롭게 임명된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기소에 동의한 것으로 미뤄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로도 상당한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불법 행위를 저지른 정황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의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문제가 불거지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수사를 막으려 했다. 범죄 여부의 궁극적인 판단은 법원이 하겠지만, 이런 수사 방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혐의의 상당 부분이 사실일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케 한다.

이들은 왜 이렇게 결코 해선 안 될 불법을 저지르게 됐을까? 한비자(韓非子)가 경고했듯이 인군(人君)이 호오(好惡)를 드러내면 아랫사람은 그에 맞춰 행동하게 마련이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가장 소망하는 일은 송 후보의 당선”이라고 한 예전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 일찍이 대통령이 이렇게 대놓고 말을 했었으니 불법도 무릅쓰며 송 후보의 당선에만 매달렸을 개연성이 짙다. 대통령이 개입 공작을 주도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의 속성상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도 지시를 내린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사자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같은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30일 검찰에 출두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검찰의 기소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기획된 것”이라고 폄훼했다. 5시간 뒤 송 시장도 마치 사전 조율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주장을 쏟아냈다. 이제 언론 플레이가 통할 단계는 지났다. 버틴다고 지나갈 사건이 아니다. 하늘의 그물은 엉성하지만 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