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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일본 정부가 새해부터 모든 공문서에 표기되는 일본인 성명의 영문 표기를 성·이름순으로 쓰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예컨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경우 Shinzo Abe로 표기되던 것을 Abe 먼저 쓰도록 한 것이다. 아베 정부는 지난해 6월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에 앞서 세계 각국의 언론 매체에 일본인 성명의 로마자 표기를 성·이름순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예 공문서 표기를 바꾸도록 정부 차원의 액션에 나선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이를 ‘작은 철자법 혁명’으로 규정했다. 1876년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중국식 유교문화를 빨리 탈피하고 서구를 배우자는 의미에서 영문 성명 표기를 서양식으로 바꿨던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이니 혁명으로 부를 만하다. 메이지 개혁가들은 유교식 가부장제가 일본 사회를 정체시킨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급진적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당시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5∼1901)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도 이런 사조를 반영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에선 일본인의 영문 이름을 굳이 서양식으로 표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많아졌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59%의 일본인이 성을 먼저 표기하는 데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세계 3위 경제대국이자 아시아의 대표적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이다. 21세기가 아시아 세기로 불리는 만큼 이제 일본 성명 영문 표기도 정상화할 때라는 의식이 생겨난 셈이다. 여기엔 아베 총리가 개헌을 통해 추진하려는 보통국가화 의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주한 일본대사관 측은 아직 “권고사항”일 뿐이라면서 일본 여권의 표기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메이지 유신 후 150년 가까이 이어진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일본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AP, 로이터, AFP 등 세계 주요 통신과 뉴욕타임스 및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들은 여전히 일본인 영문명의 표기를 이름·성 순으로 쓰고 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정부가 성명 표기 순서를 동아시아 전통에 따라 원상회복하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앞으로 성·이름순으로 쓰겠다고 지난 4일 자 기사에서 밝혔다. 일본의 이름 표기 ‘탈구입아(脫歐入亞) 혁명’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