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비건 만나고 나온 이도훈 이도훈(오른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6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면담한 직후 미국 워싱턴DC의 국무부 청사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는 ‘동의’의 뜻 아냐
‘입장 알겠다’는 외교 수사

美 해리스 대사 발언에 대해
송영길 “무슨 조선 총독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 구상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 외교 고위 관계자들의 잇단 방미와 설득에도 한·미 워킹그룹 논의를 내세우며 제동을 걸었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의 협의를 말하면서도 제재 위반이 아니라며 밀어붙일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과 오찬 겸 면담 후 특파원들과 만나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 미국이 여전히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독자적 활동 공간을 만들려는 한국에 미국이 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지난 14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드러났다. 강 장관은 회담 후에 개별관광과 관련해 “(미국 측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해했다’는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입장을 알겠다’는 외교적 수사다. 실제로 청와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당시 “미국이 이해했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이후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미국은 특히 한·미 간 조율과 워킹그룹을 통한 논의를 강조하며 한국 정부의 남북 협력 추진에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연일 개별관광과 남북 협력 추진에 대해 ‘한·미 간 긴밀한 조율’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16일 서울에서 가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개별관광과 관련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이는 워킹그룹을 통해 한국 정부의 남북경협 추진을 견제하겠다는 의미다. 또 북한 관광과 관련해 일부 한국인이나 기업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 의미도 담고 있다.

한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은 17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해리스 대사 발언에 대해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라고 비난했다. 이는 한국 사회 일각에서 일본계 미국인인 해리스 대사의 출신을 들어 ‘조선 총독’이라는 인종차별적 비난을 하는 일에 여당 정치인이 편승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자신의 출신과 관련한 일각의 비난과 관련해 “나는 주한 일본계 미국인 대사가 아니라 주한 미국대사”라며 “내 출신을 가지고 (일제강점기) 역사를 가져다 나에게 씌우려는 건 실수”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손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