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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체육인 최윤희 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 임명됐을 때 쓴웃음이 났다. 이 정권의 ‘내 편 쓰기’ 강박증이 정말 지독하구나, 싶어서였다. 청와대는 임명 사실을 전하며 최 씨에게 이런저런 능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에 대한 보은임은 불문가지이다. ‘아시아의 인어’였던 최 씨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바라건대, 그가 공직에서도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서 국민의 사랑을 지켰으면 한다. 그러나 기자로서는 이 정부가 문체 분야에서 편향 인사를 드러낸 사례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는 대선 캠프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을 첫 번째, 두 번째 문체부 장관으로 택했다.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선거를 도운 친문(親文) 인사를 앉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크고 작은 문체 기관들의 수장을 거의 예외 없이 캠프 출신 인물들이 차지했다.

정권이 선거를 거든‘내 편’에게 보은하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에게 자리를 줘야 차기 선거 때도 세력이 모인다는 계산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무리의 친정권 인물들이 싹쓸이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들 중에 취임 후 열심히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도 있으나, 정권을 뒷배 삼아 보신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체육은 인간의 영혼과 신체를 다룬다. 고도의 전문성과 독자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종종 정치 권력자와 측근들은 정권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이용하려 든다. 비전문가들이 소수의 전문가와 함께 요란한 구호를 내세우며 설친다. 거기에 맞서는 이들을 야만적으로 짓누른다. 박근혜 정권이 그랬다. 현 정권은 그걸 저주하며 탄생했으나 속내는 다르지 않다. 블랙 리스트가 화이트 리스트로 바뀌었을 뿐이다. 명망 있는 문화·체육인들이 그 리스트에 속하려 정권에 동조하는 언행을 한다. 그들은 문체 영역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음을 모른 척한다. 개혁을 원하는 국민과 동행한다는 명분으로 자기기만을 한다. 그게 한자리 얻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치신사납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전문 분야 공력이 가볍게 여겨진다. 모든 걸 정권과의 친분이 좌우한다는 냉소가 퍼진다. 내달 초 임기가 끝나는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선임에 대한 무용계 우려에도 냉소가 묻어 있다. 순수 예술을 하는 춤꾼들이 동업의 친정권 인사가 누군지 따지는 것은 희극적 비극이다. 강수진 현 감독처럼 안으로 신망이 높고 밖으로 뚜렷한 성과를 낸 인물도 친문 정치에 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탓이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최근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구한말 때나 해방 직후랑 똑같다. 달력이 아니라 지도책을 보는 사람이 앞으로 100년을 끌고 갈 것이다.” 패거리 정치의 근시안에 머물지 말고, 한 세기 앞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고언이다. 만사의 기본인 인사가 특히 그래야 한다. 이 정권은 지독한 편 가르기 인사로 일관했다.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미래 한국의 혼과 몸을 담당하는 문체 분야에서라도 그래야 한다. 올봄에 임기가 끝나는 기관들의 수장 선임이 시금석이 되길 바란다. 헛될지라도 놓을 수 없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