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로베르토 데 빈센조(앞줄 오른쪽)가 1968년 PGA투어 마스터스 4라운드를 마치고 스코어카드 접수처에서 의자에 앉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진행요원을 바라보고 있다.

4R 공동 1위로 경기 마쳤는데…
17번홀 버디를 동반자가 ‘4’적어
자신의 ‘3’과 달라 졸지에 2위로
공동선두였던 골비 행운의 우승

이미지 크게보기 이인세 골프역사 칼럼니스트

1968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마스터스 4라운드. 아르헨티나 출신의 로베르토 데 빈센조는 17번 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공동선두였던 밥 골비(미국)에게 1타 앞섰다. 마지막 18번 홀만 잘 마무리하면 된다. 빈센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 기량을 갈고닦았다. 이미 한 해 전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이름도 알려졌다. 45세의 늦깎이였지만 이제 꿈에 그리던 마스터스 우승컵과 그린 재킷이 눈앞에 있다. 마침 그의 생일이었다. 갤러리들은 선두인 그를 따라다니면서 ‘해피 버스데이’를 외치며 응원했다. 흥분한 빈센조는 동반자 토미 아론(미국)과 함께 18번 홀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 드라이버샷은 잘 맞았다. 빈센조의 캐디는 남은 거리를 계산해 6번 아이언을 내밀었다. 그런데 빈센조는 5번을 달라고 했고 캐디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세컨드 샷은 그린을 넘어 뒤편 언덕으로 떨어졌다. 칩 샷으로 홀과 1.5m에 붙였으나 원 퍼트에 실패, 보기를 하고 말았다. 1타 차로 이길 수 있었지만 동타가 됐다.

마지막 홀을 마무리한 빈센조와 아론은 18홀 옆의 간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진행요원에게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빈센조는 간이의자에 발을 뻗고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스코어카드를 확인하던 요원이 잠시 대회위원들이 있는 클럽하우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플레이오프가 어떻게 진행될지 본부석의 발표만 기다리고 있던 갤러리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마침 골프의 전설이자 대회장인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의 주인공 보비 존스(미국)가 휠체어를 타고 나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마스터스 회장과 경기위원장 등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빈센조가 스코어를 허위로 기재했거나 잘못 기재했다는 발표를 한 것이었다. 이유인즉, 함께했던 두 사람의 스코어카드가 틀렸다는 것이었다. 확인 결과, 빈센조는 17번 홀 타수를 3이라고 제대로 적었지만 동반한 마커였던 아론이 제출한 스코어카드에는 4로 적혀 있었다는 것. 아론이 무심코 적은 숫자는 4였다.

당시 마스터스에서는 동반자와 스코어카드가 다를 경우 높은 숫자를 선택하는 규정이 적용됐기에 빈센조는 17번 홀에서 버디(3)가 아닌 파(4)를 한 것으로 기록됐다. 따지고 보면 스코어를 줄이려고 속인 게 아니라, 65타를 쳤으나 66타로 늘어난 셈이었다. 우승은 결국 밥 골비 차지가 됐다. 밥도 그린 재킷을 입으면서 민망스러웠고 갤러리들은 대회위원회에 야유를 보냈다. 빈센조는 아론이 원망스러웠지만, 스코어카드를 확인하지 않은 자신을 탓해야 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딱 한마디, “난 정말 어리석었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73년 마스터스에서 반전은 또 있었다. 5년 전 동반자의 스코어를 잘못 적었던 아론이 우승할 기회를 잡았다. 선두를 달리면서 13번 홀(파5)에서 아론은 버디를 추가했다. 그러나 동반자가 4타가 아닌 5타로 적었다. 동반자는 한창 주가를 날리던 조니 밀러(미국)였다. 그런데 아론은 마지막 홀이 끝나고 본부석에 가기 전 밀러의 스코어카드와 자신의 것을 대조했고 1타가 더 적힌 것을 발견했다.

아론은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역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