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 예산 처리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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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부장

지난 10일 정체불명의 ‘4 + 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 대안신당) 협의체가 예산 부수 법안 등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 예산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을 때,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지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야는 ‘밥그릇’이 걸린 선거제 개편안(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을 둘러싼 싸움질을 하느라 예산 부수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법 행위라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런 예산안 처리에 앞장선 것은 목불인견(目不忍見)의 추태다.

겉보기에는 예산 부수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을 통과시키는 게 별로 심각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행위는 국기(國基)를 문란하게 하는 것이다. 한 해 예산(총지출)은 국민 세금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 결정하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어디에, 얼마를 쓸지 결정하려면 한 해에 들어오는 돈(총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한다. 흔히 세금을 걷는 것에 대해서만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금을 쓰는 것 = 세금을 걷는 것’이다. 예산 부수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내년 예산을 통과시킨 또 다른 부작용은 6조 원이 넘는 예산·기금의 근거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 안에는 없었는데 정치권이 끼워 넣은 2조1000억 원의 소재부품장비경쟁력강화특별회계(소부장 특별회계)는 근거 법인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전부 개정 법률안(소부기업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정체불명의 예산이 됐다. 소부장 특별회계 외에도 공익형 직불기금(2조6000억 원), 기초연금 예산(1조6800억 원) 등이 모두 불법적인 예산 혹은 기금으로 전락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부장 특별회계는 근거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예산 배정 계획까지 확정됐지만, 집행은 유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돈을 못 쓴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부기업 특별법은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등 128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민주당 등은 소부장 특별회계를 내년 예산에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이다. 국회의원의 법치(法治) 무시가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산 당국의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행태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의 의결 순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며 “2010년, 2011년 예산안 처리 시에도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홍 부총리가 얘기한 2010년과 2011년은 소위 국회선진화법 통과(2012년 5월) 이전이다. 국회선진화법 통과로 예산안 자동 부의 조항이 포함되는 등 예산 당국이 큰 힘을 얻게 된 게 사실인데, 경제부총리가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되기 이전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예산 부수 법안보다 예산안이 먼저 의결된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은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한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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