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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퇴근길에 들른 동네 과일가게 한가운데에 모과가 소담스럽게 쌓여 있네요.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생각나 슬쩍 웃음이 납니다.

속담대로라면 이 집 망신을 제대로 시키고 있는 셈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모과는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과일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울퉁불퉁한 생김새에다 과육이 단단해 씹을 수도 없고, 맛 또한 시고 떫어 과일전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지만, 모과의 향기만큼은 어떤 과일도 따라올 수 없지요.

모과는 자기가 있던 자리에까지 오랫동안 향기를 남긴다고 합니다. 내가 떠난 자리도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을까요.

깊어가는 겨울, 추위에 떨던 언 몸이 향긋한 모과차 한 잔에 스르르 녹습니다.

사진·글 =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