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에 강력하게 주장하던 것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었다. 그런데 이 연비제 도입에 대한 5당 대표 의원 간의 합의가 깨지더니, 국회 상정이 임박해서는 ‘4+1 합의’마저 위태로워 보인다. 왜 이렇게 갈등이 계속되는가?

갈등의 주된 원인이 각 당의 이해관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의석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이와 반대로 군소 정당들은 의석수 확대를 기대하면서 찬성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연비제 도입을 선거제도 개혁 또는 정치개혁의 성과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연비제의 기대효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이런 기대효과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엄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독일식 연비제의 기대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표(死票)를 최소화해 민의에 충실한 선거 결과를 가져온다. 둘째, 의원들의 전문성 제고와 역할 확대에 도움이 된다. 셋째, 국회의 역할이 지역구에 볼모로 잡히지 않고, 국정을 위한 활동에 무게중심을 둘 수 있다. 물론 이런 기대효과는 연비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때 가능한 것이며, 이를 위한 전제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주목할 점은 독일과 뉴질랜드에서 성공한 연비제가 헝가리와 루마니아에서는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실패의 주된 원인은 제도의 본래 취지를 벗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된 선거제도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한국식 연비제도 이런 전철을 밟게 될 우려가 결코 작지 않다.

먼저, 지역구 의석수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75석으로 늘리는 이른바 50% 연동형에 대해 민주당과 군소 정당들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 이것이 국회에 상정된 안이다. 그런데 이것은 진정한 ‘연동형’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어 초과의석 발생 확률이 높으며, 연동의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석수 증감이 발생하는 독일과는 달리 75석 안에서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초과의석 정당에 대해서도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되도록 함으로써 연비제의 본질에 반하는 선거제로 변질됐을 뿐만 아니라, 평등선거의 원칙에 위배돼 위헌성(違憲性)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는 민의에 충실한 선거이기를 이미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과 군소 정당 사이의 선거법 협상 과정에서는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지 않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50석으로 줄이고, 이에 더해 50석 중에서도 25석에 대해서만 연동형으로 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런 ‘이전투구’로는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고, 국민의 지지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패스트트랙의 270일 동안 수정 없이 올라온 것을 본회의에서 급작스럽게 변경하려는 것도 논란의 소지가 매우 크다. 결국, 용의 머리를 내세우고 거창하게 시작했던 선거제도 개혁이 그냥 뱀 꼬리도 아닌 독사 꼬리를 달고 나오는 셈이다.

일단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첫발을 잘못 떼게 되면 더 많은 혼란과 왜곡이 있게 됨을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실패 사례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정치권에서 더는 국민의 이름으로 선거제도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독일식 연비제를 도입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서 정말 독일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