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가회동 집사’ 빈센트 리는 요즘 사람들은 집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집을 즐기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가질수록 집은 더 따뜻해진다고 했다. 그의 집은 나누기 위해 공들여 꾸며졌다. 곽성호 기자

- ‘쓸모인류’ 저자 빈센트의 손님 초대 철학

좋은 음식·거창한 준비 없어도
초대하는 정성·함께 즐길 여유
만남 자체만으로 큰 의미 있어
집은 먹고자는 공간이자 놀이터

분홍·금빛으로 꾸민 한옥집에
아내 친구들·동네 청년 초대해
음식·온기 나누며 행복감 느껴

매일 아침 브런치를 차려내고 독학으로 익힌 고난도 요가를 척척 해낸다. 오래된 가회동 한옥을 핑크색과 골드 빛으로 꾸미고 아폴로니아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붙인다. 뭐든 뚝딱 고치는 데다 팝 오버부터 프렌치 코스 요리까지 못하는 요리가 없다. 누가 언제 들이닥쳐도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집은 기본, 아내의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스스럼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진짜 게으르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며, 무엇보다 대충 살지 않는다. 가회동 집사 빈센트 리. ‘자연인’을 제치고 ‘쓸모인류’라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중년 남자의 로망으로 만들어버린 화제의 책 ‘쓸모인류’(몽스북)의 공동저자다. 들여다볼수록 놀랍고 신기한 빈센트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마음을 끈 건 그의 쓸모 많은 작은 한옥이 마치 생명체처럼 생기와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거다. 사람들이 포도송이처럼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 갓 구운 빵과 커피잔까지 미리 데워놓은 따끈한 커피가 있는 곳. 아내의 친구들부터 동네 빵집 청년, 이웃의 수녀님까지, 누구나 초대되어 환대받는다. 집은 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를 달군 가장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우리의 집은 사람의 온기로 충분히 따뜻할까? 각종 모임으로 거리가 들뜬 연말, 문득 가회동 집사 빈센트가 궁금해졌다. 집으로 사람을 초대한다는 게 정말 어떤 걸까?

이미지 크게보기 예쁜 찻잔, 다양한 종류의 허브와 소스들. 빈센트 리가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시간과 온기를 나누기 위한 것들이다.

―‘쓸모인류’가 나오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기 쉽다. 하지만 난 그냥 하는 편이다. 책 출간 이후, 해야 할 일을 차곡차곡 정리해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중 리스트의 맨 위에 있는 두 가지를 실행에 옮겼다. 네덜란드에 있는 버틀러(butler·집사) 스쿨에 다녀온 게 그 하나고, 캘리포니아 모던 컬리너리에 대한 온라인 쿠킹 클래스를 수강한 게 다른 하나다. 이를 통해 상황에 맞는 서비스와 질 좋은 요리로 손님을 더 잘 대접할 수 있게 됐다.”

―버틀러 학교라니, 정말 흥미롭다. 그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3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부터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세련되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관심을 갖게 됐다. 좋은 음식, 음악, 그리고 즐거운 대화가 있는 분위기.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손님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다 독학으로 말이다. 이렇게 익힌 내 방식이 괜찮은지 점검해보고 싶었다. 정말 실력이 되는지 궁금했다. 난 호기심이 생기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꼭 풀고야 마는 성격이다. 그냥 넘어가면 날 속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어렵기로 소문난 네덜란드 버틀러 스쿨에 입학했다.”

―무엇을 배웠나? 좋은 버틀러란?

“사람을 접대하고 배려하는 다양한 기술을 배웠다. 거기에 비추어보면 그동안 나는 꽤 잘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하나, 정말 간과하고 있던 걸 배웠다. 그건 항상 웃으면서 일해야 한다는 거다. 따귀를 맞을 때조차도. 스마일이 버틀러의 규율이자 진짜 유니폼인 셈이다. 좋은 버틀러란 안 보이면서 보이고, 보이면서도 안 보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성실한 농부, 정원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좋은 버틀러도 세팅 안의 모든 것을 신경 쓰지만, 세팅 밖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고 버틀러를 자청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온 나에겐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집은 내게 오피스이자 놀이터, 먹고 자는 곳이자 모임을 갖는 복합 공간이다. 집에 친구를 초대해 함께 시간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집의 쓸모를 즐기고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은 집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집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이고 미국이고 집은 어느덧 영광의 감옥이 됐다. 나는 처음부터 우리 집을 나누기 위해 공들여 꾸몄다. 그렇게 같이 쓰고 나누면서 집이 더 따뜻해졌다.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다 좋아한다. 불편한 바 스툴에 앉아서 일곱 시간 동안 수다를 떨며 잊었던 온기를 되찾는다. 가깝고 프라이빗한 공간의 힘은 대단하다. 집에서 만날 때의 밀도는 확실히 다르다.”

―손님을 가뿐하게 치르는 노하우가 있다면?

“잘 차린 요리, 멋진 서빙, 완벽한 세팅이 노하우는 아니다. 나에겐 오히려 손님과 파티를 대하는 ‘태도’가 노하우다. 캐주얼해도 괜찮다. 음식을 집으로 시키면 어떻고, 또 라면을 대접한들 어떤가? 같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중요하다. 옛날엔 물 한 그릇 떠놓고 비는 걸로 정성을 표했다. 초대한다는 마음 자체가 벌써 정성이며,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 외에는 그냥 보너스 같은 거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간단한 음식과 음료, 대접하는 마음, 그리고 즐길 준비만 돼 있으면 충분하다.”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 호모사피엔스들은 서로 간의 물리적 접촉이 필요한 존재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얼굴을 보고 냄새를 맡고 음식을 먹고 좋은 소리든 나쁜 소리든 들어가며 씨름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나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소모해야 할 물리적 칼로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나 온라인에서의 접촉이 0칼로리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인간으로서 육체를 간직하는 한 이런 접촉이 필요하다는 건 변하지 않을 거다. 우리 집은 우리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장소다.”


■ 빈센트 리

1952년 서울 출생.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자랐다. 코넬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 휴즈항공 등에서 일했다. 몇 해 전 은퇴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나라인 한국에 들어와 서울 가회동 한옥에 자리 잡았다. 자기 생활에 맞게 직접 집을 고치고 필요한 물건을 고안하고, 음식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나누며 제 몫의 쓸모를 찾아 나서는 빈센트의 라이프 스타일과 일상의 철학을 담은 ‘쓸모인류’ 출간 이후, 그는 많은 이의 워너비가 됐다.


■ 빈센트의 홈파티 팁

1. 가벼운 마음

파티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호스트의 마음가짐은 이래야 하고 손님의 태도는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것. 서로 마음을 나눈다는 기대만 갖고 가면 된다. “집에 초대받다니 정말 마음이 설레” “친구가 찾아온다는 게 즐거워” “만날 약속을 하고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이런 마음이면 충분하다.

2. 중요한 건 만남 그 자체

격식을 차린 음식이나 음료, 최신형 텔레비전이 모임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보리차 한 주전자와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만 있어도 얼마든지 즐거운 파티가 될 수 있다. 집에서 만든 음식을 더한다면 그건 보너스다. 파티의 주인공은 내가 보고 싶었던 친구들, 만남의 목적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마음의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것이다.

3.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어떤 파티를 하든, 몇 번을 하든 이번 파티가 올해 최고의 파티라고 생각하고 주최할 것. 최선을 다해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최선을 안 함으로써 가능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번 해보면 알게 된다.

안나량 스타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