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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 윤춘호 지음 / 푸른 역사

18세기 조선인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을 주인공으로 한 책이다. 동시에 이승훈의 여섯 살 아래 처남이었던 정약용을 조역으로 등장시켜 그 삶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이승훈은 서학을 들여오고 이를 믿었다는 이유로 1801년 45세의 나이에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죽음은 순교의 모습을 띠었으나 순교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공개적으로 믿음을 저버리는 배교 선언을 세 번이나 반복했던 탓이다. 후대 저술가들은 배교자로 죽은 그를 다루는 것을 저어해 왔다. 그런 이승훈의 생애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면서 ‘믿는 일의 어려움’에 짓눌린 인간적 면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시도는 신선하다.

정약용은 이승훈과 달리 후대 저술가들이 ‘위인’으로 숱하게 다뤄 온 인물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위인의 어두운 뒷모습을 더듬는다. 젊은 시절부터 신앙과 정치권력 양쪽을 다 탐했던 인물로 처세에 능했다는 것이다. 신유박해 때 천주교 동료들을 가차 없이 밀고해서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은, 그런 삶의 방식이 위기의 순간에 나타난 것이라는 시각이다. 다산 신화를 흔든다는 점에서 이 책의 도전은 새롭고 논쟁적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연구가인 저자는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매우 독특하게 펼친다. 이승훈과 정약용의 생애를 역사 기록으로 추적하되, 그 공백은 상상력으로 채웠다. 소설가의 그것처럼 마구 상상의 날개를 펼친 것이 아니라 여러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 추정으로 이뤄져 있다. 그 추정 근거 자료를 각주에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학술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이 역사 혹은 종교 관련 서적으로 읽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시공간에 살았던 인간에게 믿는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책의 1장은 이승훈의 편지, 마지막 6장은 정약용의 편지글이다. 저자가 그들을 대신해 가상으로 쓴 것인데, 문장이 미려하고 내용은 치밀하다. 책의 중간에 나오는 천주교사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교황청이 조선 신도들에게 원리주의를 강요해 제사를 금하게 한 것이다. 그로 인해 배교와 순교의 역사가 더 처참해졌다. 책은 그것을 생생히 다룬다.

신유박해 국문 현장을 다룬 5장을 읽다 보면 몸이 달달 떨린다.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온갖 거짓을 지어내면서도 정약용을 포함한 동료 신도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은 이승훈, 서학의 위험성을 갖은 언사로 비난하며 동료들을 고변해서 혼자만 살아남은 정약용. 그들의 모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에도 의미를 지니는 것은, 믿는 일의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현재형인 까닭이다. 280쪽, 1만5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