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소설가 한강(사진) 작가가 장편 ‘흰’ 이후 3년 만에 새로운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한 작가는 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에 새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첫 회분 원고를 실었다. 지난 2016년 한국인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 작가는 같은 해 장편소설 ‘흰’을 내놓은 이후 주로 국내외에서 강연 등을 통해 모습을 비춰 왔다. 한 작가가 새 장편소설을 통해 어떤 작품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해 온 국내외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새 작품에는 주인공 ‘k’의 친구인 ‘인선’의 어머니가 제주도에서 벌어진 4·3사건 당시 살아남아 학살로 죽은 사람들 시신 사이에서 가족의 시신을 찾는 모습이 묘사된다. 작가는 ‘k’와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려 봉합 수술을 받은 ‘인선’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새 작품이 4·3사건을 파고들 것이란 예상을 하게 한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주인공 ‘k’는 소설가로 한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다. ‘k’는 한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을 다룬 소설을 쓰면서 자주 악몽을 꾸고 편두통, 위경련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주인공이 쓴 소설은 ‘소년이 온다’를 연상케 한다. 이를 통해 한 작가는 간접적으로 전작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토로한다.

“2012년 겨울, 그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읽으면서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접적인 폭력이 담긴 꿈들이었다. 공수부대를 피해 달아나다 어깨를 곤봉으로 맞고 쓰러졌다. 엎어진 내 옆구리를 발로 차서 몸을 뒤집던 군인의 얼굴을 이제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착검한 총을 두 손으로 모아쥔 그가 힘껏 내 가슴을 내리 찔렀을 때의 전율만 남아 있다.”

악몽에는 무덤과 함께 바다가 빠르게 밀려 들어오는 모습이 등장한다.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소설 ‘흰’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새 작품은 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깊이 있게 다뤄온 한 작가가 창작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작품으로 다룰 역사의 범위를 더욱 확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