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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은 지난 4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협의체를 가동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최종 조율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례성 강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연비제)는 3가지의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게임의 룰’인 선거법이 정치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은 25.5%, 의석률은 41.0%였다. 민주당은 15.5%의 보너스율(의석률-득표율)을 얻었다. 한국당(+7.2%), 국민의당(-14.0%), 정의당(-5.2%)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더구나 자기 당의 득표율보다 무려 44석을 더 많이 획득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이렇게 엄청난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기존의 선거제도를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서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을 지정하면서 선거법을 먼저 처리한 다음 공수처법을 처리한다는 순서까지 미리 정했다. 본회의 안건 처리 순서는 무소속 국회의장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어떻게 특정 정당들이 순서를 미리 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야합이고 월권이다. 위헌적 요소도 있으며, 정치적 거래로 탄생한 연비제를 개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권력구조(대통령제)와 선거제도 간의 조화가 없다. 원론적으로, 연비제는 내각제와 맞는 제도다. 따라서 선진 의회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연비제를 채택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그만큼 제도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받는 제20대 국회에서 나타난 이합집산형 다당제가 만들어져 상습적 정국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민주당의 3선 민병두 의원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느 정당도 과반이 불가능하며, 지금도 식물국회인데 앞으론 국정이 올 스톱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우리 정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셋째, ‘깜깜이 선거’의 위험성이다. 현 선거제도에서는 유권자가 자신의 표가 어떻게 작동될지 알고 투표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후보가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작으면 사표를 우려해 다른 정당의 후보를 찍고, 비례 투표에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을 찍을 수 있다. 이것이 ‘전략적 분리 투표’다. 거대 정당보다는 제3 정당을 키우기 위해 유권자는 종종 이런 투표 행태를 보인다.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지역구에서 각각 14.9%와 1.6%를 득표했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각각 11.8%P와 5.6%P를 더 많이 얻은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연비제는 의석 배분 방식이 너무 복잡해 유권자가 의석 배분이 어떻게 될지 사전에 알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권자가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선거법은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선거제도는 정치 게임의 기본 규칙으로, 민주 정치의 핵심인 대의(代議)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따라서 민주당은 선거법을 ‘4+1 협의체’를 통해 새로운 땜질식 절충안을 도출하기보다는 반드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합의가 힘들다면, 다가오는 내년 4월 총선은 현행 선거제도로 의원 정수를 확대하지 않는 선에서 지역구와 비례구 비율을 조정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공수처법 등 다른 패스트트랙 안건들은 총선 공약으로 내거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