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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정치부 차장

한·미·일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여부를 둘러싼 ‘혈전’이 92일 만에 일단 막을 내렸다. 청와대가 8월 22일 종료 결정 이후 지난 22일 조건부 연장 발표까지 정확히 3개월 만이다. ‘지소미아 사태’ 이후 한·미·일 간 득실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올해 66년을 맞은 한·미 동맹에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남겼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지난 3개월간 보여준 전략은 실망스러웠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미국 ‘중재’를 끌어내기 위한 ‘지소미아 카드’는 오히려 미국의 강한 압박을 자초했다. 이미 대북제재 완화 문제로 문재인 정부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불신은 더 깊어졌고, 불똥은 이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으로까지 튀었다. 누구보다 지소미아 유지 필요성과 미국의 반발을 잘 알고 있었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소신’ 발언도 거의 전무했다. 사실상 ‘직무 방기’다.

하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우리의 방파제 역할을 통해 일본은 방위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자신들의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며 밝힌 한국의 ‘일본 안보 방파제론’은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은 태풍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동시에, 유엔사 후방기지인 주일미군 기지 7개 운영비용을 부담한다는 점에서 안보적 차원에서도 한국의 방파제다. 한·일 안보 관계는 문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일방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상호보완적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논리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국방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인 데 비해, 우리는 2.5%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본에 방위비 지출을 늘리라는 주문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일본의 재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평화헌법 수정을 통해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오히려 명분을 쥐여주는 셈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등을 포함한 동맹 정책과 맞물리면서 동북아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다. 재무장 일본과 사실상 핵보유국 북한을 이웃으로 둔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옵션은 핵 개발 등으로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과연 문재인 정부는 독자적 핵 개발을 강행할 자신이 있는가.

문 대통령이 획기적 대안을 택할 수 없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게 일조할 수 있는 논리·전략부터 수정해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위험한 논리를 제공한 외교·안보 참모진부터 갈아야 한다. 외교가에서는 지소미아 사태 일단락 이후 “큰 형(미국)이 작은 형(일본)에게 ‘막냇동생(한국)에 양보하라’고 압박한 게 이번에도 통했다”는 굴욕적 평가가 나온다. 이게 문 대통령이 8·15 광복절에 밝힌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가는 길은 아닐 것이다. ‘자주 국가’라는 이상과 녹록지 않은 현실의 괴리를 정확한 상황 인식과 정연한 논리로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외교·안보팀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