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워진 조형물 심의 탈락한 조각가들 뿔났다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앞에 설치된 전뢰진 조각가의 작품 ‘선경-가족(Fairy land-family)’. 1988년 작품으로 ‘공공 조형물’의 하나다. 김호웅 기자

■ 지자체 ‘건축물 공공미술작품 심의’서 부결작품 속출

서울시 부결률 2년새 2배로↑
경기도 가결률 0%까지 급락

“5년내 5회 설치작가 배제說
새로운 블랙리스트 만드는 꼴”

지자체 “일부 작가 독식현상
왜곡된 시장구조 개선 하는중”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자체의 ‘건축물 공공미술작품’ 심의제도가 변경된 후 부결 작품이 속출하자 조각가들을 중심으로 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미술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미술협회와 한국조각가협회 임원 및 회원 50여 명은 지난 주말 인사동에서 긴급 회동, 심의제도 개선을 주장하며 서명행사를 가졌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최근 공공미술작품심의의 높은 부결률로 작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서울시 심의방법을 개선하고 경기도 심의제도를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명에는 27일 현재 140여 명이 참여했다.

1995년 시행된 ‘건축물미술작품제도’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했고 조형물 작가들에게는 ‘큰 시장’을 만들어 주었다.

공공조형물로도 불리는 건축물 미술 작품은 공공시설 안의 회화·조각 등을 말하며, 올해 6월 기준 전국에 6287점이 설치돼 있다. 작가들의 불만은 공공 조형물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심의에서 부결률이 높아지며 시장 자체가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서울시는 지난 2017년 80명 이내의 심의위원 풀제에서 20명을 심의위원으로 고정하고, 젊은 작가·신진 작가들도 공공조형물 설치에 참여토록 하는 ‘기회균등’을 골자로 심의기준도 일부 바꾸었다. 그 이후 2017년 35%였던 부결률이 2018년 61%(312건 중 189건), 2019년 60%(354건 중 211건)로 2배 가까이로 높아졌다. 최근 심의 선정위원 구성을 새롭게 한 경기도 역시 부결률이 높아졌다. 8월 이전에는 가결률이 62.5%였으나 9월에는 12%, 10월에는 ‘0%’로 급락했다. 지난 23일 회합에 참석했던 한 작가는 “부결률이 높아지며 젊은 작가, 신진 작가에게 기회가 돌아가기는 커녕, 오히려 심사위원 취향의 작가들만 선정 됐고, 게다가 심의에서 5년 안에 5번 이상 공공조형물을 설치한 작가는 제외시킨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며 “기회균등을 빌미로 양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예술의 ‘질적 특수성’을 외면한 채 또 하나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꼴”이라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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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현재와 같은 심의위원 20명 고정제를 예전처럼 풀제(80~100명, 심의는 15~20명)로 해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고 △심의위원구성을 ‘건축심의’와 같이 전공자 80%이상(현재는10~20%) 보장 △심의위원의 학력, 지역 형평성 고려한 인력 구성 △심의위원 공개와 작가의 작품설명 기회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경기도에 대해서는 심의위원 선정위원회 구성 및 과정 공개를 요구 중이다.

최근 이처럼 부결률이 높아지며 ‘선택적 기금제’에 대한 행방에도 관심이 높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작품이 선정되지 않아 건축물에 미술작품을 설치 못하면 해당 금액의 70%를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 작가들은 “고의적으로 부결률을 높여 기금으로 받으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중이다. 지난 10월 국감에서 이상헌(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축물미술작품 제도로 2011년부터 걷은 기금이 300억이며, 공공미술 사업에 쓴 액수는 30억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조형물 작가들의 이 같은 불만과 집단행동에 대해 서울시 등 관계자들은 “기존의 심의제도에 따르면 몇몇 작가가 독식하게 돼 있어 젊은작가, 신진작가에게는 아예 기회가 안 돌아갔다”며 “그렇다고 일부 작가를 배제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고 왜곡된 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예술성과 공공성,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 엄격하게 심사하다 보니 부결률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용어설명

건축물미술작품설치제도 : 연면적 1만㎡ 이상 신·증축하는 일정한 용도의 건축물은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1%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작품의 설치에 사용하거나 직접 설치 비용의 일정 비율(7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금으로 출연하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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