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오스카 레일랜더, ‘인생의 두 갈래 길’, 1857

조주연의 현대미술 속으로 - ③ 예술의 문앞에 버려진 ‘과학의 사생아’

■ 서양미술사

회화는 인간의 손으로 구현하는 의식의 산물…기계의 산물인 사진은 최대한‘자기부정’
동시적 재현 아닌 순차적 재현, 선명함 대신 흐릿하게, 실재의 재현보다 사진가 의도 표현에 주력

1839년 12월에 나온 흥미로운 판화가 한 점 있다. 프랑스의 의회에서 다게레오타입, 즉 은판사진술이 특허 인정을 받고 사진술의 발명이 공식 선포된 바로 그해에 나온 석판화로, 제목은 ‘은판사진술 광풍’이다. 판화는 발명 즉시 ‘광풍’ 수준으로 인기몰이를 한 사진의 위력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으뜸 요소는 화면의 오른쪽 맨 뒤 배경으로부터 전경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사람들의 장사진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위는 라파엘로, ‘시스티나 예배당의 성모자’, 1512~1513, 세부. 아래는 줄리아 캐머런, ‘기다림’, 1872

이들은 초상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다. 전경에는 한 부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서 있다. 빛의 양에 따라 7~10분이었다고 하는 당시의 노출 시간을 감안하면, 사진가가 쉼 없이 촬영을 한다 해도 1시간에 고작 6번을 찍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화면의 배경에 깨알처럼 표현된 줄 끝의 사람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촬영의 기회를 잡을 가망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사람들은 내일 또 와서 줄을 설 것인데, 이는 장사진 외에도 화면 곳곳을 누비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

그런데 이 판화에는 즐거운 환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파의 소용돌이에 묻혀 얼른 눈에 띄진 않지만, 화면의 오른쪽 중경을 보면 네댓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을 맨 나무틀이 늘어서 있다. 이 슬픈 장면의 주인공들은 화가다. 초상화라는 당시 가장 유력한 생계 수단을 사진에 빼앗긴 화가들이 절망해 목을 맨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대목은 사진의 과장 혹은 오판이라 할 수 있다. 사진 때문에 목숨을 끊은 화가는 없고, 오히려 회화는, 앙드레 바쟁의 말대로, 문명 세계의 미술에서 미학적 충동의 발목을 잡아온 심리적 충동, 즉 미라 콤플렉스(mummy complex·죽은 자를 방부처리하고 시간의 흐름에 맞서 과거를 보존하는 인간의 욕망)를 사진에 넘겨준 후, 가시적 현실의 유사한 재현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의 상징적 표현을 향해 훨훨 비상해 나갔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 이미지의 세계를 지배해온 것은 단연 회화다. 현대의 후예인 우리에게 이 ‘회화’라는 말은 캔버스 회화를 가장 먼저 연상시키지만, 분류상 회화는 단지 캔버스 회화만이 아니라 모든 평면에 선과 색채로 형상을 만드는 인간의 활동 모두를 포괄한다. 그래서 회화는 조소와 더불어 ‘조형예술’, 즉 형상을 만드는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회화의 특징은 모든 종류의 회화가 일단은 다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즉 회화는 수제 이미지(manual image)다. 말할 필요도 없이 회화를 만드는 손은 ‘인간’의 손이고, 이때 손은 그것을 구사하는 인간의 정신을 대행한다. 따라서 회화는 어떤 인간이 생각한 바를 손으로 형상화한 의식의 산물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로베르 드마시, ‘무대 뒤’, 1904, 세부.

손이 대행하는 정신의 중요성은 회화가 수공예라기보다 신사의 예술, 즉 자유학예로 발돋움을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점점 커져,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면 회화는 근대적 순수예술 체계의 일원이 되고, 이러한 순수예술은 역사, 철학과 더불어 지식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는다. ‘백과전서’에 ‘예비적 고찰’을 쓴 달랑베르에 의하면 시, 회화, 조각, 음악, 건축은 ‘순수예술’이라고 불리는 자유학예의 일부인데, 순수예술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또 상상력이 뛰어난 창의적 천재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기억을 사용하는 역사나 이성을 사용하는 철학 같은 다른 지식과 구별된다. 이렇게 해서 회화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고도의 정신적 산물이 됐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발명되자마자 대중적으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진술이 회화가 군림하고 있던 이미지의 세계로부터는 오랫동안 예술적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원리상 사진은 사진기 앞의 세계를 빛으로 기록하는 것이기에 세계를 손으로 재현하는 회화보다 더 정확한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뛰어난 정확성이 문제였다. 사진이란 사진기라는 기계를 통해 광학의 원리로 만들어지는 기계 이미지(mechanical image)인데, 정신이 깃들지 않은 기계의 산물을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에도 대상을 선택하고 환경을 조성하며 빛을 조절하는 사진가의 작업을 통해 정신이 개입한다. 그러나 이는 회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발휘하는 정신의 자유와는 비할 바가 못 되며, 그리하여 결국 사진에서는 인간의 정신보다 기계의 구조가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과 미술의 만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매체의 만남은 의외로 일찍 184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이라는 스코틀랜드의 화가가 450명이나 등장하는 초대형 집단 초상화를 그리는 데 보조수단으로 사진을 활용했던 것이다. 심지어 1859년에는 사진이 처음으로 살롱 전에 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이 전시된 곳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 부문이었다. 결국 19세기 내내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했는데, 사진은 기계의 산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특히 정신의 산물이라는 반기계적 사고가 팽배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사진의 대응은 예술이 되기 위한 자기부정이었다. 사진으로는 예술로 인정을 못 받으니, 최대한 사진이 아닌 척, 최대한 회화인 척하게 됐다는 말이다. 예술이 되고 싶었던 사진은 세 가지 지점에서 자체의 근본 속성을 부정하며 회화를 모방했다. 우선 재현의 방식에서 사진술의 특징인 동시적 재현을 회화의 특징인 순차적 재현으로 바꿨다. 이것이 조합인화 사진이다. 두 번째로 재현의 성질에서 사진술의 특징인 선명함을 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흐릿함으로 바꿨다. 마지막으로 재현의 주제에서 사진술의 특징인 실재 세계를 버리고 회화의 특징인 정신적 세계로 나아갔다. 이것이 연출 사진, 즉 외부 실재의 재현보다 사진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사진이다.

순차적 재현을 통해 회화를 모방하는 사진은 1857년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의 사진 ‘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볼 수 있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을 모델로 삼아 조합인화 방식으로 제작한 사진이다. 화면을 좌우로 나누어 착실한 인생의 길과 방탕한 인생의 길을 대비시킨 이 사진은 교훈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좌우 대칭 및 원근법 구도 그리고 누드 형식을 사용한 데서도 고전주의 회화의 충실한 모방이다. 레일랜더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촬영이 아니라 스케치를 먼저 했다. 감광물질을 바른 종이 위에 스케치한 다음 그 포즈대로 부분들을 촬영해서 인화한 사진 30장을 조합한 것이다. 순차적 재현 방식을 썼고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인생의 두 갈래 길’은 사진의 기계적 수법을 벗어나고 회화처럼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존재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테오도르 모리셋, ‘은판사진술 광풍’, 1839, 석판화

레일랜더의 작품은 대중의 호평과 평단의 혹평을 동시에 얻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유례가 없는 최상의 사진이며 최상의 그림”이라는 말로 레일랜더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비평가들은 “빛의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다”는 타박으로 조합인화의 부자연스러운 연결 부위를 꼬집었다. 이뿐만 아니라 비평가들은 이 교훈적인 주제의 사진을 부도덕하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는데, 여성 누드들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드화와 달리 누드 사진은 카메라 앞에 실제로 벗은 여성이 있어야 찍히는데, 이것이 당시의 점잖은 비평가들은 민망했던 것이다.

흐릿한 재현을 통해 회화를 모방하는 사진은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의 놀라운 초상사진들에서 볼 수 있다. 캐머런 역시 사진의 기계성을 완화해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지만, 순차적 재현을 흉내 내지는 않았다. ‘줄리아 잭슨’의 초상사진처럼 얼굴의 절반을 어둠 속에 묻어버리는 과감한 조명을 쓴다든지, 조리개를 열어 심도를 얕게 한 다음 클로즈업을 한다든지, 노출시간을 연장해서 일부러 초점이 맞지 않고 상이 흔들리게 한다든지, 심지어는 사진 원판과 인화지 사이에 반투명한 매체를 삽입해 일부러 인화를 흐리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썼다.

캐머런은 연출 사진을 통해 회화를 모방하는 방식에서도 독창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1872년 작 ‘기다림’은 라파엘이 그린 ‘시스티나의 마돈나’ 발치께 나오는 귀여운 아기 천사를 모방한 것이다. 그러나 날개의 모양에서도, 천사의 표정에서도 캐머런의 천사는 라파엘의 천사와 다르고 또 독특한 분위기다. 회화를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가의 특정한 해석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예술 사진의 추구는 최초의 휴대용 카메라가 나온 1888년 이후 더욱 강화됐다. 당시의 코닥 광고 문구대로 사진을 찍는 일이 아무나 “버튼만 누르면 끝”인 평범한 일이 되자, 이런 아마추어 사진과의 차별성을 예술성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 예술성은 물론 여전히 회화성이다. 189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약 20년간은 정녕 회화와 유사한 효과를 내며 상당한 수준의 예술적 외양을 갖춘 사진이 풍미한다. 어찌나 회화 같은지 이름마저 회화주의(Pictorialism)인 사진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회화주의 사진의 회화 같은 효과는 촬영 기법보다 아라비아고무와 수채화 물감, 중크롬산염을 이용한 인화 기법에서 나왔다. 간략히 중크롬산 고무인화라고 하는 이 기법은 세 재료를 섞은 용액을 인화지에 바르고, 마르면 음화에 밀착해 태양광에 노출시킨 다음 물로 씻어내 양화를 얻는 방법이다. 중크롬산염의 감광성 때문에 노출을 받은 부분은 아라비아고무가 딱딱해지면서 물에 씻겨 나가지 않고, 노출을 받지 않은 부분만 물에 씻기며 상이 나온다. 음화의 위치만 정확히 맞춘다면 이 과정은 한 장의 인화지 위에서 여러 번 되풀이될 수 있고, 물에 씻는 과정에서 사진가들은 붓을 이용해 인화지를 섬세하게 지워낼 수도 있었다. 그 결과 깊은 음영과 붓 자국이 자연스럽게 남게 되는 회화주의 사진은 로베르 드마시의 ‘무대 뒤’에서 보듯이 수채화나 담채 소묘와 놀랄 만큼 닮은 모습으로 회화를 모방하는 사진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아무리 회화에 필적하는 외양을 갖췄더라도 이런 사진은 어디까지나 사진의 매체적 본성을 스스로 억압한 결과였기에, 잘해봐야 회화를 제법 흉내 낸 예술풍 사진은 될지언정 회화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하나의 예술임을 주장하기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러니 19세기의 예술 사진은 현대에 등장한 새로운 예술이라기보다 예술의 문 앞에 버려져 하염없이 문안을 기웃거리는 과학의 사생아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이론가


■ 용어설명

미라 콤플렉스 : 현대 영화 이론의 선구적 인물인 프랑스 앙드레 바쟁(1918~1958)의 저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명제. 바쟁은 회화와 조각을 비롯한 모든 조형 예술은 존재의 영구적 보존과 그 영속성을 통한 시간의 한계를 인간의 잠재적 욕망인 ‘미라 콤플렉스(le complexe de la momie)의 발현이라고 주장했다. 즉 모든 조형 예술의 시작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이고 인간은 ‘미라’처럼 죽음과 소멸을 극복하고자 예술을 시작했다는 이론이다.

회화주의 사진 : 회화주의 사진(pictorial photography)은 사진 표현의 목표를 미학적, 감성적, 지적인 효과에 두는 방법. 1850년대 중반 발명된 사진이 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됐고, 당시에는 ‘고급 미술(high art) 사진’이라고 불렸다. 회화주의 사진은 중크롬산염이 혼합된 아라비아 고무 용액을 종이에 도포해 사진 이미지를 만드는 고무 인화법이나 합성사진 같은 작위적인 암실 기법을 사용해 당시 인상주의 시대의 회화와 유사한 사진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