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가 안보 재앙의 단초가 될 조짐이 분명해졌다. 작은 불씨가 산불이 되고, 작은 구멍을 방치하면 거대한 제방도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지소미아 폐기를 결정하면서 한·미 동맹과 무관하다고 둘러댔지만, 심각한 오판(誤判)으로 판명됐다. 문 정부가 이미 일본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통보를 했기 때문에 내일 밤 12시를 시한(時限)으로 해 자동 폐기된다.

청와대는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TV에 나와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과 안보상의 협력을 해나갈 것”이라면서 ‘종료 이후’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런데 문 정부가 ‘포스트 지소미아’ 위기를 제대로 내다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은 지소미아 폐기를 동맹의 신의를 저버린 행위로 보고 있다. 미·일 안보 공조 틀인 지소미아 폐기는 ‘북·중 선회’ 행보로 읽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한미군 감축·철수론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더 엄청난 방위비 요구는 기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소미아 폐기를 동맹 해체의 전주곡으로 보고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 통보를 할 수도 있다. 통보만 하면 한·미 동맹은 1년 뒤에 그냥 사라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앞두고 FTA 폐기 통보 서한을 준비하도록 지시했지만, 참모들이 겨우 막아낸 적도 있다.

이런 조짐만으로도 국가적 재앙이 쓰나미처럼 덮친다. 북한의 핵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유사시 주일 미군기지 유엔군 병력의 한국 파병에도 차질이 생긴다. 외국자본은 이탈하고, 한국이 유엔 대북 제재 위반으로 세컨더리보이콧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동북아는 21세기 화약고로 불릴 정도로 미·중 국익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미국·일본과 멀어지고, 중국·러시아·북한과 가까워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문 정부는 ‘자주국’이라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이런 모든 피해는 대한민국 국민이 두고두고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