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경일 전임기자

전남 여수 중앙동의 종포해양공원에서 ‘낭만포차’가 사라졌다. 여수의 낭만포차는 전남 여수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의 하나다. 비록 허름한 포장마차가 모여 이룬 공간이지만 노래 ‘여수 밤바다’의 여운이 담겨서인지, 낭만포차는 낭만적인 여수 밤바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낭만포차는 2016년 5월 문을 열자마자 관광객들 사이에서 소위 ‘대박’을 쳤다. 한 해 자그마치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낭만포차를 찾았을 정도였다. 여수엑스포 개최 이후 쇠락해가던 여수 중앙동 원도심의 활성화를 앞서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여수 밤바다의 낭만포차가 종포해양공원에서 사라졌다.

낭만포차는 지난 10월 1일부터 거북선대교 아래로 자리를 옮겨갔다. 대형버스나 중장비가 세워져 있던 거북선대교 아래쪽이 새 낭만포차가 돼 일렬로 포장마차식 주점들이 늘어섰다. 밤바다의 화려한 야경과 버스킹 공연이 어우러졌던 종포해양공원에 비하면, 거북선대교 아래 낭만포차는 어딘지 어둡고 좀 후미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주말이면 포장마차는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낭만포차가 거북선 대교 아래로 옮겨간 건 지역 주민들의 거듭된 민원 때문이다. 이른바 ‘과잉관광’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해온 여수 시민들은 낭만포차가 들어선 해양공원 일대에 쓰레기와 취객 소음이 넘쳐난다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여수시에 이전을 요구해왔다. 급기야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된 현 시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낭만포차 이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실 낭만포차에 대한 민원은 이전에도 잦았다. 낭만포차가 영업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종포해양공원은 ‘귀신 나올 것 같다’는 말이 딱 맞는 어둡고 음침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낭만포차에 손님을 빼앗긴 인근 음식점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관광객 유입이 급격히 늘고 상권이 활성화되며 덩달아 다른 음식점들도 혜택을 받게 되자, 반발은 곧 수그러들었지만 말이다.

여수의 낭만포차 이전은 과잉관광이 지역에서는 이미 정치적 사안이 됐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다. 한 시민단체는 낭만포차 이전을 환영하는 논평에서 낭만포차를 두고 ‘관광산업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시민들에게 부담과 불편을 안기며 관광업자들을 배 불리는 정책’의 사례로 지목했다. 과연 그랬던 것일까. 전임 시장의 관광정책에 대한 시민단체의 생각은 그렇다고 치고, 그동안 낭만포차를 찾은 손님들은 뭔가.

과잉관광에 대한 지역의 논란은 이제 여행자들의 목적지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먼저 과잉관광 논란이 있었던 나라에서는 사람들로 붐비는 기존의 인기 여행지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서는 추세가 뚜렷하다. 다국적 숙박예약 사이트 부킹닷컴은 최근 ‘2020년 8대 여행 트렌드 예측’을 발표하면서 첫 번째 트렌드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해결을 위해 지명도가 높지 않은 숨은 여행지의 인기 상승’을 들었을 정도다. 누구인들 지역주민에게 ‘민폐’가 되는 여행자가 되고 싶겠는가. 본디 문제는 여행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지자체의 근시안적 태도나 정책 실패에 있다. 관광객 유치에만 혈안이 된 지자체들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