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진압 18일 새벽 경찰이 시위의 본거지 격인 홍콩이공대 캠퍼스 기습작전을 벌여 한 시위 참가자의 팔을 비틀어 제압하고 있다. 최루탄이 발사돼 연기가 퍼지는 가운데 사제 방패를 들고 있던 다른 시위 참가자가 경찰 진압을 피해 도망치는 모습이 보인다. AP 연합뉴스

경찰 캠퍼스 완전 포위뒤 진입
학생들 바리케이드 불지르고
활·화염병 맞섰지만 중과부적
진압 과정서 사방에 비명 터져
들것 실려 구급차 이송 잇달아

“민주화 쟁취할 마지막 기회”
일부 시민들 봉쇄 뚫고 합류

이미지 크게보기

18일 오전 5시 30분 홍콩이공대(HKPU) 서쪽 출입구. 홍콩 경찰의 새벽 기습검거 작전이 시작됐다. 홍콩이공대는 시위대의 근거지 역할을 해왔다. 전날에도 경찰은 진입작전을 시도했다가 한발 물러선 뒤 학생들의 무방비로 취약시간대인 새벽 시간을 택했다. 저항하는 대학생들은 바리케이드에 불을 질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폭발음과 비명이 들리더니 아수라장이 됐다.

◇홍콩이공대는 전쟁 중 = 기습작전 초기,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가 탈출하려고 달려오다가 캠퍼스를 포위하고 있던 경찰에 줄줄이 붙잡혔다. 경찰은 땅바닥에 엎드린 시위자의 팔을 강하게 비틀고 린치를 서슴지 않았다. 경찰에게 맞은 시위대가 비명을 지르고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소리를 크게 지르며 경찰을 비난했다. 경찰은 이날 새벽녘 외부로 나가려는 의료진과 일부 취재진도 체포했다. 학생들이 모여 있던 재학생회관(Student Resident Hall) 인근으로는 방패를 든 경찰들이 자리를 잡고 학생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화염병, 돌, 양궁 활 등으로 경찰에 맞서던 시위대는 결국 중과부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학생들을 붙잡은 경찰들이 잡힌 학생들을 수차례 경찰봉으로 내리쳤다. 결국 학생들은 집결지 앞 바리케이드에 불을 지르며 시간을 번 뒤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들도 도주로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 대부분 잡혔다.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와 함께 의자, 집기, 화염병의 알코올 냄새가 섞여 있는 화염과 연기가 홍콩이공대 곳곳에서 목격됐다.

학교 주변 인근에선 빠져나온 시위대를 돕기 위해 자원한 시민들의 차량이 학교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람들을 태우고 현장을 황급히 벗어났다. 시위대가 사용 중인 애플리케이션에는 탈출로를 찾는 메시지와 어디서 대기하고 있으니 찾아오라는 메시지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탈출 안내 사이트도 시위대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상당수의 시위대가 머리에 붕대를 감거나, 움직이지도 못한 채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이송되는 장면이 포착됐다. 손을 케이블 타이(전선 정리용 플라스틱 밴드)에 묶인 시위대 일부와 내부 의료진 등이 엄중한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 이날 현장을 빠져나온 한 시위대는 “경찰의 이 같은 강경 진압은 전에 없던 일”이라며 “시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유언장 써놓은 대학생들 = 홍콩이공대 내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은 이미 16일 오후부터 이어졌다. 이전까지 농성 중인 학생들에 대한 보호 입장이던 홍콩이공대 측이 이날 화학물질 절도 등을 이유로 경찰에 신고했고, 이를 이유로 경찰이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날 진입하려던 경찰에게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했고 경찰의 캠퍼스 진입을 저지할 수 있었다. 포위를 풀지 않고 버티던 경찰과 시위대는 하루 종일 충돌을 이어왔다. 상황은 사실 시위대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17일 경찰은 처음으로 소위 ‘음향 대포’로 불리는 장거리음향장치(LARD)를 현장에 투입했다. 지난 2009년 미국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시위 진압 때 처음 등장한 음향 대포는 이날 시위 현장 밖 500ｍ 거리에서 150㏈ 안팎의 음파를 발사했다. 음향 대포에 맞을 경우 고막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함께 구토, 어지러움 등을 느낀다고 알려졌다. 홍콩 경찰은 LARD가 무기가 아닌, 경고방송용 장치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시위대 일부는 경찰을 향해 위협수준 이상의 실탄을 발사했고, 시위대가 쏜 화살에 경찰이 종아리 부위를 맞아 다치기도 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시위대는 캠퍼스 내부에서 화염병을 제작하고 우산과 의자, 책상 등을 운반해 바리케이드를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건물 한편에 휴식처를 마련해 교대로 보초를 서가며 일전에 대비했다. 경찰이 미처 포위하지 못한 길을 통해 캠퍼스 내로 들어와 시위대에 합류하는 홍콩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 중에는 아직 어린 10대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후방 지역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시위대 파르코 웡(17)은 “원래 보다 온건한 시위가 열리고 있는 몽콕(旺角)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곳이 더 급박해 보여 왔다”며 “이번이 정말 홍콩이 민주화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만큼 반드시 싸워서 승리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참가한 시위대 대다수는 이미 유언장을 적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밤 증원병력을 지원받은 경찰은 소방차 물대포와 장갑차를 동원, 고무탄을 쏘면서 다시 진입을 시도했고,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져 장갑차를 불태우는 것으로 저항했다. 소식을 듣고 인근으로 몰려온 시민들은 이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고, 일부는 경찰이 봉쇄한 틈을 타 시위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오후 9시 30분 경찰은 응급 구조요원과 언론인을 포함해 이공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떠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불응하는 사람은 무조건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10시 20분쯤 시위대로 추정되는 시민이 인민해방군 막사 인근에 경찰이 설치한 저지선을 향해 돌진하자, 시위 진압 경찰은 차량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이 실탄 사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고, 차량 운전자는 유턴한 후 도주했다. 현장에는 최루탄 발사총 외에도 AR-15 소총을 든 경찰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화염병, 활, 차량 등 살상용 무기로 공격을 계속할 경우 실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홍콩 야당 의원들이 홍콩이공대로 달려와 중재를 시도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경찰의 강경 진압에 시위대의 규모는 상당 부분 줄어들었는데 여전히 농성을 포기하지 않고 캠퍼스 내에서 저항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홍콩=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